오락과 예술 사이 극장 간판화가-위경혜 지음
89년 역사의 광주극장을 처음 찾는 이들이 신기해하는 것중의 하나가 밖에 걸린 손그림 간판이다. 영화를 알리는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이었던 극장 간판은 컴퓨터 실사가 도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역 극장문화사를 기록하고, 관련 인물들을 발굴하며 아카이빙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온 위경혜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 교수가 이번에는 ‘간판쟁이’로 불렸던 극장 미술인들에게 주목했다. “극장 운영자가 보기에 극장간판은 홍보 수단이었지만, 간판화가가 보기에 그것은 작품이자 이벤트”였기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작업에 임했다.
이번에 나온 ‘오락과 예술 사이 극장 간판화가’는 극장 간판과 지역의 간판 화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저자는 신문기사, 출판물 등 각종 자료를 살피고 극장에서 활동하다 화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오주치, 박광식 등을 인터뷰했다. 특히 김창중 간판화가와 진행한 구술 증언 채록을 통해 지역 간판 역사와 간판화가의 역동적인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꼼꼼하게 일상을 기록해온 김창중은 2015년 자서전 ‘삶의 회상과 흔적-삶의 되새김과 자국’을 발간한 이력이 있다. 필자는 그와 수차례 만나 자서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며 세대별 극장 간판화가들을 조명했다.
광주지역 간판화가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해 멀티플렉스 초반까지 활동했다.그들은 선후배 사이라도 스승과 제자 사이를 형성해 도제 방식으로 그림을 배웠다. 광주에서는 제국관(동방극장, 무등극장,
무등시네마로 개칭)에서 시작된 계열과 광주극장 화가를 스승으로 삼은 계열이 공존했다.
책에서는 조선미술전람회 유화 부문에 입선한 실력자였던 간판화가 1세대의 대표주자 김원용을 비롯해 간판화가에서 영화 제작 현장으로 진출해 ‘연산군’ 등으로 국내외 영화제 미술상을 수상한 정우택 등을 소개한다.
광주 지역 극장 대부분에서 일했던 김창중은 대표 간판화가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광주로 온 그는 광주서중을 졸업하고 1951년 광주극장 미술부에 들어가 간판을 그리기 시작한다.
“액션 싸우고 막 칼질하고 뭣하고 요런 것은 좀 빨간색을 많이 쓰고, 좀 슬픈 영화는 파란 계통 같은 거를 많이 써. 이제 필체도 제일 중요한 것이 액션 영화 같은 것은 거칠게 그리고 좀 말하자면 연애 같은 것은 부드러운 글씨체로 쓰고.”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구술을 통해 그는 극장 없는 동네 노천에 포창을 치고 영화를 상영하던 ‘로뗀바리’의 기억과 미술인 노조를 조직하게 된 사연, 지금은 사라져 버린 중앙극장, 신영극장, 계림극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구술은 극장 간판 제작 과정 및 도구, 업무 체계와 임금, 선전탑 제작을 비롯한 간판 제작 이외의 활동 등 간판화가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애수’, ‘하이눈’, ‘아이다’, ‘무정’, ‘언젠가 어머니라 불러다오’ 등 국내외 화제작을 그린 1950~60년대 간판과 당시 작업현장을 담은 사진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필자는 “이 글은 일상생활 가운데 자리한 영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위경혜 교수는 텍사스주립대 영화학 석사, 캘리포니아주립대 동아시아문화학과 박사 과정을 수학했으며 중앙대 영상예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돌아올 수 없는 경계인 최남주’, ‘광주극장’, ‘호남의 극장문화사:영화수용의 지역성’ 등이 있다.
<전남대학교 출판문화원·1만 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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