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립미술관 ‘우제길 초대전: 빛 사이 색’ 전 5월 12일까지
초기작부터 신작, 아카이브 등 총 100여 점...4월 중 작가대화
“나는 선(線) 중에서도 직선을 가장 사랑한다. 그 이유는 모두 그렇듯, 직선이 갖는 의미는 강직하다든지 강인한 성격을 지닌 때문일 것이다. 이는 내 스스로 갖고 있는 내성적인 여러 결함들 때문에 직선을 사랑하고 그 직선의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제길 작가가 ‘진선’을 모티브 삼아 창작활동을 하는 이유다. 그의 말대로 그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정적이다. 내면으로 파고드는 성향이나 기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작품을 향한 열망, 창작의 세계로 나아가는 힘은 역동적이다. 내적인 에너지가 작품에 응결돼 직선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일련의 예술가들처럼 그 또한 개인적인 내향성을 외적인 작품 세계로 승화시켰다.
광양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에서 마주하는 우제길의 작품 세계는 경이롭다. ‘우제길: 빛 사이 색’(5월 12일까지)이라는 전시 주제는 그의 예술세계와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빛과 어둠에 드리워진 어떤 ‘사이’를 끊임없이 헤쳐 온 작가의 지난한 세월이 작품 ‘사이사이’에 투영돼 있다.
이지호 관장은 “이번 전시는 일평생 빛을 좇아 작품 활동을 펼쳐온 우제길의 화업을 조망할 수 있는 계기”라며 “작가가 추구해했던 ‘빛’과 ‘색’을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7일, 전시장에는 광양을 비롯해 인근 순천, 여수 그리고 영남에서 온 방문객들 모습이 눈에 띈다.
작품은 파노라마처럼 전시장을 따라 연결돼 있다. 1960년대 이후 초기 대표작부터 다채로운 색채가 돋보이는 2024년 신작, 아카이브 자료까지 모두 100여 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빛’으로 변주된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문득 우제길이 꿈꾸었던 ‘빛 사이 색’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한글과 함께 영문으로 표기된 ‘LIGHT SPACE COLOR’는 좀더 깊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빛과 색 사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혹여 ‘시간과 공간 사이’가 아닐까. 빛은 이내 사라지는 반면 색은 그대로 남아 존재를 증명한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금새 흔적 없이 흩어지지만 공간은 여전히 남아 실존의 역사를 대변한다.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이 어둠 속 무언가를 좇아 뛰어다니곤 했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중에는 반딧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빛을 잡기 위해 뛰어다녔던 그 유년의 기억은 평생 빛을 추구하는 창작의 동인이 되었던 것 같다.”
1942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한 작가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광양과 광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광주서중을 거쳐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국 앵포르멜 대표작가인 양수아를 만나 추상미술에 눈을 뜬다. 교사로 부임 후 1992년까지 교직생활과 작업 활동을 병행하면서 ‘주경야작’(晝耕夜作)의 삶을 산다.
특히 1960년대 후반 호남지역 추상미술의 거점 역할을 한 ‘에뽀끄’ 회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실험적 작업을 시했다. 1972년 제8회 전라남도 미술전람회에서 추상화가 최초 우수상 수상, 1976년 한국미술대상전 특별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 화가로 발돋움한다.
전시는 작업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기하학적 추상의 시작’은 1960년대~1970년대까지 추상이 탄생하기 전 작품을 소환한다. 2부 ‘어둠에서 찾은 빛’은 면의 틈 사이로 솟아나는 빛 작품들, 어둠을 배경으로 형상화된 대작들을 소개한다.
새로운 조형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3부 ‘새로운 조형의 빛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수평적 구조에서 산형, 첨탑형 등 구도 변화를 시도한 그림이 주가 된다.
4부 ‘색채의 빛’은 한국 고유의 색에서 착안한 원색의 빛을 콜라주와 테이핑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5부 ‘지지 않는 빛’은 평생 빛을 쫓아온 우제길 작가의 신작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특히 이전에는 면을 토대로 빛을 형상화했다면 근래의 작품은 빛을 중심으로 면을 구조화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색채가 주는 화려함, 조형성을 가미한 선과 면의 변주는 한마디로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던 그의 삶을 기호화한다.
우 작가는 “창작이 나는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이 작업을 한다는 게 즐겁고 제작을 하는 동안 편안해서 좋다”며 앞으로도 작업에 천착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천상 작가이다. 아니 예술가다.
한편 김소라 학예연구팀장은 “우제길 작가는 평면 회화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역동적으로 구현해왔다”며 “‘빛’과 ‘색’ 그리고 ‘사이’가 함의하는 다채로운 의미를 일상과 연계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4월 중 작가와의 대화가 예정돼 있으며, 전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술관 누리집 참조.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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