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정기 말살하려 했던 일제 만행 그려
풍수사 역 최민식, 젊은 무녀 김고은 등 주연
무녀가 섬섬옥수로 칼을 집어 든다. 악귀를 내쫓는 ‘대살굿’을 펼치기 위해서다. 그가 뺨에 숯덩이를 세줄 칠할 때는 접신한 자의 면모도 엿보인다. 순간 우리 민족을 표상하는 호랑이가 떠오른 건 왜일까.
“파묘요”라는 외침이 울려 퍼지자 일꾼들은 묫자리를 파(破)한다. 이윽고 땅을 파던 삽자루가 관에 막히고 그 속에서 ‘험한 것’이 느껴진다. 한국식 오컬트를 표방하는 영화, ‘파묘’다.
지난달 22일 스크린을 강타한 ‘파묘’는 ‘사바하’, ‘검은 사제들’로 알려진 장재현 감독의 신작미스터리물이다. 개봉 첫날부터 오프닝 스코어 ‘33만 명’을 기록하며 ‘서울의 봄’ 아성을 무너뜨렸으며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열흘째인 2일 5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 ‘1000만 돌파’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다.
영화는 조선의 풍수와 음양오행을 통해 민족정기를 말살했던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상징적 작품이다.
그 디테일은 인물들의 이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작품 초입에 등장하는 박지용(김재철 분)은 친일파 박재순·이지용의 이름에서 착안했다. 그의 의뢰를 받고 미국으로 향한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 그리고 대통령 염도 맡는다는 베테랑 장의사 영근, 풍수사 상덕(최민식)도 마찬가지……. 이들 ‘파묘 카르텔’의 배역명도 각각 독립운동가의 실명에서 본떴다.
또 영근의 운구차 번호(1945)와 상덕의 차량번호(0815), 화림의 차량번호(0301)도 주제의식을 함의한다. 1945년 8월 15일, 그리고 3·1절을 떠올리게 하는 숫자들은 ‘파묘’가 공포물이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기를 진혼하는 역사물임을 짐작케 한다.
이를 위해 기묘한 한국적 무속신앙의 분위기를 잘 형상화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했다. 2m가 넘는 흙더미를 쌓고 나무 50여 그루를 심는 등, 1200여평 부지의 세트장을 ‘악지 중의 악지’로 만들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중 상덕이 묘지의 흙을 맛보는 ‘흙 먹방’ 씬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음지에서는 ‘쇠맛’, 양지는 ‘된장 맛’이 나 풍수사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장면은 과학성 등을 넘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풍수사’로서 상덕의 전문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파헤친 묘지에는 말뚝 역할을 하는 일본 오니(귀신)의 관이 첩장 돼 있었다. 쇠말뚝을 숨기고 독립운동가의 눈을 피하려 관을 중첩해서 매장하던 일제의 교묘한 술책이다.
긴장감이 고조될 때쯤에는 뱀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한 설화 속 괴물 ‘누레온나’가 등장한다. 호불호가 있겠으나 오컬트 명작으로 손꼽히는 ‘곡성’에서 괴물이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겼던 것과는 달리, ‘파묘’는 귀신이 관객들 앞에 정면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이에 맞서는 도굴꾼들은 자신들의 도구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새기고 혈투에 임한다. 이들은 독립의열단체 철혈단(鐵血團)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다.
일제는 한민족의 정기를 말살한다는 이유로 첩장은 물론, 백두대간에 말뚝을 심었다. 작중 “여우(일본)가 호랑이(조선)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가 아프게 읽혔던 이유다. 영화는 이 같은 비극의 역사를 완곡하게 떠올리게 하면서, 한국식 정취에 일본의 소재를 녹여낸 독특한 오컬트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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