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출신 이종천 시인 시집 ‘오래된 무늬처럼’ 펴내
“꿈에서 그려진 그림인지 알 수 없다. 계절을 밀어내 듯 체념한 눈총이 함박눈으로 내리고 있지만 문을 밀고 나온 그는 쓴잔을 내리고 있을 터, 라디오에서는 아리아가 울려 퍼지고 동지는 저물고”
전북 진안 출신 이종천 시인의 말이다. 계절의 절기상 동지와 맞물리는 시기라 시인의 말이 유독 깊이 다가온다.
이 시인이 최근 ‘오래된 무늬처럼’(상상인)을 펴냈다.
작품집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재에 대한 성찰을 풀어낸 작품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이미 변해버린 세계와 그럼에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추구하는 화자의 심리 등이 서정적인 언어로 형상화돼 있다.
“구르는 소리가 들렸어/ 떼굴떼굴 구르고 또 구르는 저 소리는 무엇일까 싶었지// 나풀거리는 풀잎을 모퉁이로 몰고 가는 바람들/ 코너와 같은 막다른 골목 외딴섬의 잔혹사를 보게 되었어/ 환호와 탄성의 뒤안길 그 앞에는 가면으로 가려진 세계// 꽃들을 비웃듯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잠시 이파리들 속에서 쉬고/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구르지만/ 굴러 봤자//속 빈 감정은”
위 시 ‘깡통’ 전문은 모두 떠나버린 외딴섬에서 보게 된 풍경을 스케치하듯 묘사하고 있다. 한때는 “환호와 탄성”이 깃들어 있을 영화의 순간이 이제는 “막단른 골목 외딴섬”으로 변해버린 상황을 화자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단 섬뿐이었겠는가. 화려한 꽃들의 시절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데굴데굴 구르다가” 어느 곳에나 버려질 ‘깡통’의 순간일 뿐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의 모든 삶의 흔적에도 드리워져 있을 법하다. 화자는 그것을 ‘속 빈 감정’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시인인 전형철 연성대 교수는 이번 시집에 대해 “인간과 삶과 존재, 세계 내의 실존의 형식 투쟁과 휴머니즘의 확장에 대한 지지와 탐색을 통해, 때로는 질풍의 속도로 때로는 완보로 건너온 산책자의 기록이며 또 다른 ‘아케이드 프로젝트’인 셈”이라고 평한다.
한편 이 시인은 그동안 시집 ‘그가 보고 싶다’를 펴냈으며, 이번 시집은 전북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로 출간됐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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