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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년…광주 희생자 고 김재강씨 아버지 김영백씨의 하소연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어
아들 생각하면 날마다 눈물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 억울”
28일 광주서 유가족 릴레이 걷기
“아들이 죽은지 1년이 지났지만 참사의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광주 출신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故김재강씨의 아버지 김영백(63)씨의 애끓는 하소연이다.
26일 오전 아들이 다녔던 광주시 남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카페에서 광주일보 취재진을 만난 김씨는 처음에는 담담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들 이야기가 시작되자 눈물을 쏟아냈다.
1년이 지났지만 아들의 서울행을 찬성한 자신의 결정 때문에 아들을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이다.
김씨는 “조선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아들이 토목기사 자격증을 따고 취업에 성공해 서울과 통영 중에 어디로 가야할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서울로 간다는 아들의 말에 동조했다”며 “그 때 그 선택을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한다. 품에서 떠나보내고 불과 4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들을 볼 수 없게 될 줄 몰랐다”고 눈물로 매일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이어 “그 날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집 주변을 걸을 때마다 평생 아들과 함께한 광경이 펼쳐져 이사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경제적 문제로 옮기지 못하고 있어 더 마음이 아프다”며 “아내는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던 아들이 생각나 지금까지도 밥상을 차릴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한참을 울기만 했다.
이태원 유가족 협의회 광주·전남 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참사 당시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29일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유가족협의회를 통해 정부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진상규명’, ‘추모공간 조성’, ‘책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등을 요구했지만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참사 당시 정부의 사전대비에 대해서도 “알면서도 대처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사고 당시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로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안전요원을 전혀 배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지시를 내려야 할 공무원도 없었지 않냐”며 “수 많은 아들, 딸들이 희생됐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밝혀진 것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 억울하고 통탄스럽다”고 분개했다.
또 정부의 사후조치에 있어서도 중대본 설치를 바로하지 않은 점, 희생자들을 추운 날씨에 사고현장에 방치한 점 등을 들어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미비한 조치로 살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 단체에 의해 희생자들이 ‘놀러가서 죽은 자식’이 됐다”며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어 “유가족도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일상생활로 돌아가야하는 만큼 정부가 추모공간을 만들어주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며 “정부에서 추모공간 조성이 불가능한 장소들만 제시해 유가족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취재진의 마지막 질문에 김씨는 “이승과 저승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듣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펼치지 못한 꿈을 그곳에서라도 펼치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가서 만날 수 있다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한편, 이태원 유가족 협의회 광주·전남지부는 28일 오전 10시 광주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마지막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릴레이 걷기’에 나설 예정이다.
/글·사진=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광주 출신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故김재강씨의 아버지 김영백(63)씨의 애끓는 하소연이다.
26일 오전 아들이 다녔던 광주시 남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카페에서 광주일보 취재진을 만난 김씨는 처음에는 담담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들 이야기가 시작되자 눈물을 쏟아냈다.
1년이 지났지만 아들의 서울행을 찬성한 자신의 결정 때문에 아들을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이다.
김씨는 “조선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아들이 토목기사 자격증을 따고 취업에 성공해 서울과 통영 중에 어디로 가야할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서울로 간다는 아들의 말에 동조했다”며 “그 때 그 선택을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한다. 품에서 떠나보내고 불과 4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들을 볼 수 없게 될 줄 몰랐다”고 눈물로 매일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이어 “그 날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집 주변을 걸을 때마다 평생 아들과 함께한 광경이 펼쳐져 이사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경제적 문제로 옮기지 못하고 있어 더 마음이 아프다”며 “아내는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던 아들이 생각나 지금까지도 밥상을 차릴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한참을 울기만 했다.
이태원 유가족 협의회 광주·전남 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참사 당시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29일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유가족협의회를 통해 정부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진상규명’, ‘추모공간 조성’, ‘책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등을 요구했지만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참사 당시 정부의 사전대비에 대해서도 “알면서도 대처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사고 당시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로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안전요원을 전혀 배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지시를 내려야 할 공무원도 없었지 않냐”며 “수 많은 아들, 딸들이 희생됐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밝혀진 것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 억울하고 통탄스럽다”고 분개했다.
또 정부의 사후조치에 있어서도 중대본 설치를 바로하지 않은 점, 희생자들을 추운 날씨에 사고현장에 방치한 점 등을 들어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미비한 조치로 살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 단체에 의해 희생자들이 ‘놀러가서 죽은 자식’이 됐다”며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어 “유가족도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일상생활로 돌아가야하는 만큼 정부가 추모공간을 만들어주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며 “정부에서 추모공간 조성이 불가능한 장소들만 제시해 유가족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취재진의 마지막 질문에 김씨는 “이승과 저승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듣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펼치지 못한 꿈을 그곳에서라도 펼치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가서 만날 수 있다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한편, 이태원 유가족 협의회 광주·전남지부는 28일 오전 10시 광주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마지막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릴레이 걷기’에 나설 예정이다.
/글·사진=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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