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8기 리더스아카데미 강연 - ‘어디서 살 것인가’]
건축 변화 요소는 전염병·기후변화…인간, 아파트에 갇혀 자연과 단절된 삶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집에 머무는 시간 늘수록 자연친화주택 선호할 것
미래 도시 성패는 공간 재구성이 좌우…크고 작은 공원 도심 곳곳에 있어야
“건축을 크게 변화시키는 요소는 전염병과 기후변화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두가지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14세기 흑사병이 말에 의해 전파됐다면, 21세기에는 촘촘하게 짜인 항공망이 공간을 압축해 전염병의 위험성이 더욱 증가한 상황입니다. 미래 도시의 성패는 도시 공간의 재구성에 달려 있습니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공통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많아야 합니다. 공짜로 머물수 있는 공간이 없는 도시는 공통의 추억도 만들 수 없습니다.”
‘유현준 건축사사무소’ 유현준 대표건축가가 지난 30일 광주시 서구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에서 열린 ‘제8기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강연했다. ‘알쓸신잡’ 등 TV 프로그램과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공간이 만든 공간’ 등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건축과 도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 유 건축가는 이날 ‘어디서 살 것인가’를 주제로 원우들을 만났다.
그는 어떤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인가, 코로나 19로 인해 공간과 도시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 건축가는 살기 좋은 도시의 요건 중 하나로 공원을 들었다. 크고 작은 공원이 도심 곳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경우 비싼 땅값 때문에 사람들이 좁은 집에서 답답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오면 인근에 센트럴 파크가 있죠. 1㎞ 간격으로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커피숍 숫자가 가장 많은 도시인 서울도 녹지가 30% 정도로 아주 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공원은 어딘가에 숨어 있고, 대략 4㎞ 가량 떨어져 있어 평균 한 시간은 걸어야 공원을 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뉴욕은 공원 간 이동 시간이 13분 정도죠. 공원은 사이즈보다는 분포도가 중요합니다.”
유 건축가는 공간이 행동패턴을 만들며 사람들의 삶과 공간 구성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가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삶도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는 코엑스몰 등 실내공간이 핫 플레이스였으나 지금은 신사동 가로수길 등 야외거리가 핫플레이스가 됐습니다. 주거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죠.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 되고 마당과 골목길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자연과 격리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인간은 본능적으로 야외공간을 찾게 되는 거죠. 현대 사회에서 자연공간이 소멸되고 그 자리를 미디어 공간이 메우고 있는 형국입니다.”
똑같은 도심 거리라도 어떤 거리는 왜 걷고 싶은 걸까. 유 건축가는 공중파 채널이 4개였던 시절과 지금 100여 개의 채널을 만나는 시절을 비교하며 ‘선택권이 많은 거리’는 변화가 있고 그 변화가 사람을 끌어들인다고 설명했다. 100m를 걷는 동안 적어도 가게 입구를 30개 정도는 만나야 걷고 싶은 거리,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라는 것이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개될 사회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급변하는 시대에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힘을 빌어 시스템을 유지해온 종교와 지식전달, 탁아소 등의 역할을 해온 학교가 가장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원격 수업 등이 보편화하면 학교 공간은 변할 것입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이 늘면 거주지 개념도 변할 겁니다. 앞으로는 어디에 주민등록을 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서 몇 시간을 쓰느냐,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어디냐가 중요한 시대가 될 겁니다.”
그는 가족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1970년대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이어져온 요즘의 아파트 등 주거 형태는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 들이는 테라스 공간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집에서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침대와 소파 등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리더스아카데미 하반기 일정은 오는 9월 재개할 예정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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