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도 재난이다 <상> 더위에도 계층이 있나요
생활비도 없는데 전기세 감당못해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 더 가혹
한증막 실내 피해 거리로 내몰려
광주 기초생활수급자 9만여명
폭염 헉헉거리며 힘겨운 여름나기
광주·전남에 유례 없이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한증막 더위가 찾아왔다. 폭염(暴炎)과 같은 이상기후는 항상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역대급 폭염’이 찾아왔지만 기초생활수급자와 야외 노동자들은 푹푹 찌는 무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버텨낼 수 밖에 없다.
지난 5월 전기료가 인상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에어컨 한 번 켜기 힘들고 날마다 온열질환자가 계속되는 무더위에도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에 광주일보는 3회에 걸쳐 ‘폭염도 재난이다’라는 주제의 기획기사를 통해 취약계층의 폭염 피해 실태와 항구적인 폭염 대책 마련을 모색해 본다.
“에어컨이요? 비싸서 못 써요. 여태껏 사용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네요.”
2일 오후 2시께 찾은 광주시 북구 유동의 한 여관에 3년째 홀로 세들어 살고 있는 이완섭(68)씨는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9일째 이어지는 폭염에도 올해 에어컨 한 번 켜 보지 못했다. 여관 1층 복도에 ‘높은 전기료때문에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라’는 경고문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씨의 집은 실내와 실외 온도 차이가 없을 만큼 무더워 방 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씨는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 조차 켜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만 받고 사는 터라 그렇지 않아도 생활비가 부족한데 전기료까지 오르다 보니 부담이 큰 탓이다.
더구나 3평짜리 좁은 방에 살림살이를 최대한 쌓다 보니 대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아 바람이 통할 공간조차 부족했다.
이씨는 “무더위쉼터라는 경로당에 가 봤자 기초생활수급자는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집에서 버티자니 전기료가 많이 나올까 무섭다”며 “집에서는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버티고 밖에서는 은행이나 기차역 대합실을 돌아다니면서 더위를 식히는데, 빨리 더위가 한 풀 꺾이기만 바랄 뿐이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광주·전남에 낮 최고기온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면서 쪽방촌, 달동네 등지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하고 있다.
이들은 나날이 전기료가 오르면서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조차 틀기 무서운 시절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2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광주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9만 5975명이다. 차상위계층 4만 1810명까지 포함하면 13만명이 넘는 취약계층이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물가와 취업난 등으로 광주 기초수급자 수 또한 2020년 8만 4762명, 2021년 9만 1548명, 2022년 9만 3153명으로 증가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부는 지난해 2분기부터 전기료를 매 분기 인상하고 있어 취약계층에게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전기료를 kWh(킬로와트시·시간당 전력 소비량)당 8원 인상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kWh당 전기 요금을 2분기 6.9원, 3분기 5.0원, 4분기 7.4원 올렸으며, 올해 1분기에도 kWh당 13.1원 인상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2분기까지 kWh당 40.4원의 전기요금이 오른 것이다.
이 때문에 취약계층은 전기료가 많이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에 에어컨 한 번 켜지 못하고 부채질만으로 여름을 나고 있다.
이날 방문한 광주시 동구 지산동의 김홍남(여·80)씨의 집은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힐 만큼 무더웠다. 김씨의 집은 골목이 좁은 지산동 달동네에 자리잡은 터라 아무리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선풍기만 틀어도 한 달 전기요금이 3만원 넘게 나오는 바람에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을 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으로 전기료 중 3분의 1을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고는 하나, 한 달 27만원인 기초생활수급비로는 월 2만원 수준의 전기요금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김씨는 “10여년 동안 바로 앞 집에서 단칸방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조금 더 여유로운 집으로 옮겼는데, 갑자기 월 전기료가 4000원에서 3만원대로 뛰었다”며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전기밥솥도 안 쓰고, 밤에도 선풍기만 틀어놓고 자느라 매일 잠을 설치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요금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같은 날 광주시 서구 금호동의 시영아파트에서 사는 신경자(여·70)씨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신씨는 3년여 전 딸의 도움으로 집에 에어컨을 설치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좀처럼 에어컨 전원 버튼을 눌러볼 일이 없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손자가 찾아올 때나 한 번씩 트는 게 전부지, 혼자 있을 때는 대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부채질로 하루를 버틴다는 것이다.
신씨는 “집에 있어봐야 덥기만 하고 밖에 나가 이웃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움인데, 날씨가 워낙 덥다 보니 밖에 한 번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며 “그렇다고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웃들끼리 건강 안부를 챙겨 가며 잘 이겨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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