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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일본군 ‘전원살육작전’에 조선농민 처절하게 희생” 비문 명시
일본 시민단체 ‘동학기행단’ 2006년부터 탐방·사죄…성금 모아 기부
일본 정부 대신 시민들이 나서 관심…나주시·원광대 등 동참 10월 건립
동학농민혁명(1894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나주에 오는 10월 뜻있는 일본인들이 참여한 사죄비가 세워진다.
최근 일제강제동원 배상문제를 두고 일본과 전범기업의 반성이나 사죄보다는 정부가 해법안을 내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가해국 시민들의 사죄비 건립이 추진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당초에는 ‘위령비’ 형식으로 추진됐으나 일본군의 잔인한 작전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아 ‘사죄비’로 변경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비문에는 가해국 시민들이 피해국에 사죄의 마음을 전달하면서 과거로부터 비롯된 아픈 역사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양국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의미를 더하고 있다.
나주동학농민혁명 위령비 건립추진 위원회는 지난 2019년부터 건립이 논의돼 온 ‘나주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비’에 새겨질 최종 비문이 확정됐다고 23일 밝혔다.
사죄비 비문에는 “1894년 12월 10일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가 나주성에 입성한 이래 최후 항쟁 중이던 동학농민군들이 근대식 소총과 전술로 무장한 일본군의 ‘전원살육 작전’으로 처절하게 희생됐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한일 두 나라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뜻 있는 시민들이 나섰다.(중략) 일본 시민들께서 먼저 사죄의 마음을 담은 성금을 자발적으로 모아 주셨으며 여기에 나주시를 비롯한 한국 시민들이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죄비는 올해 나주 시민의 날(10월 30일)에 건립 예정이며 정확한 장소는 현재까지 미정이다.
사죄비 건립의 주체는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시민 동학기행단’과 나주시, 원광대 원불교 사상연구원이다. 당초에는 역사학자 개인의 관심에서 시작됐지만 양국 시민(단체)으로 확대된 것이다.
나카츠카 아키라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는 일찍이 동학혁명을 연구해 온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과 함께 동학혁명 전투지 답사 등을 진행하며 일본의 침략에 맞선 동학혁명의 진실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나카츠카 교수는 ‘후지국제여행사’와 함께 한국의 동학혁명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동학기행단’이란 이름으로 기획해 운영했다.
2006년 일본인 25명의 참여로 시작된 ‘일본 동학기행단’은 지난해까지 292명이 방문했다. 많게는 6박 7일간 한국의 동학 유적지를 방문한 일본 동학기행단은 일본의 만행에 깊이 사죄,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부금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모금된 기금은 118만 엔(약 1171만원).
여기에 지난 2019년 나주의 12개 시민단체 등이 모여 위령비에 대한 목소리를 냈고 박 전 총장과 함께 원광대 원불교 사상연구원 등이 뜻을 모았다. 나주시와 원광대 역시 모금을 진행했고 현재까지 2000만원 가량이 모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0월에는 일본 시민들과 원광대, 나주시가 공동으로 나주동학혁명 재조명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했다. 같은 날 열린 나주 동학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훗카이도대 이노우에 카츠오 교수가 발표한 사죄문이 사죄비 비문 내용을 결정하는 바탕이 됐다.
이노우에 교수는 사죄문에서 “잔혹한 토벌전의 역사를 발굴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데 대해 일본인으로서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역사적 사건의 전모를 한국과 일본 현지에서 밝혀내고 발굴하는 작업부터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나주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관군과 일본군의 적극적인 방어로 농민들이 무참히 학살된 아픔이 새겨진 곳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이노우에 교수가 공개한 ‘쿠스노키비요키치 상등병의 종군일지’에는 “장흥부 전투(1895년 1월 8일~10일) 이후 일본군에 포획돼 고문당해 죽은 이들이 680명에 달하며 근방에는 시체로 인한 악취가 진동하고 땅은 죽은 이들의 기름으로 하얀 은처럼 얼어붙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은 “나주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이다. 그러한 나주에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 자발적인 성금을 내 세우는 최초의 사죄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진정한 사죄나 반성 없이 외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간 과거 문제에 대해 가해국이 진정으로 반성할 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모범 사례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뜻 깊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최근 일제강제동원 배상문제를 두고 일본과 전범기업의 반성이나 사죄보다는 정부가 해법안을 내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가해국 시민들의 사죄비 건립이 추진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당초에는 ‘위령비’ 형식으로 추진됐으나 일본군의 잔인한 작전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아 ‘사죄비’로 변경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비문에는 가해국 시민들이 피해국에 사죄의 마음을 전달하면서 과거로부터 비롯된 아픈 역사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양국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의미를 더하고 있다.
나주동학농민혁명 위령비 건립추진 위원회는 지난 2019년부터 건립이 논의돼 온 ‘나주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비’에 새겨질 최종 비문이 확정됐다고 23일 밝혔다.
사죄비 비문에는 “1894년 12월 10일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가 나주성에 입성한 이래 최후 항쟁 중이던 동학농민군들이 근대식 소총과 전술로 무장한 일본군의 ‘전원살육 작전’으로 처절하게 희생됐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한일 두 나라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뜻 있는 시민들이 나섰다.(중략) 일본 시민들께서 먼저 사죄의 마음을 담은 성금을 자발적으로 모아 주셨으며 여기에 나주시를 비롯한 한국 시민들이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죄비는 올해 나주 시민의 날(10월 30일)에 건립 예정이며 정확한 장소는 현재까지 미정이다.
사죄비 건립의 주체는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시민 동학기행단’과 나주시, 원광대 원불교 사상연구원이다. 당초에는 역사학자 개인의 관심에서 시작됐지만 양국 시민(단체)으로 확대된 것이다.
나카츠카 아키라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는 일찍이 동학혁명을 연구해 온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과 함께 동학혁명 전투지 답사 등을 진행하며 일본의 침략에 맞선 동학혁명의 진실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나카츠카 교수는 ‘후지국제여행사’와 함께 한국의 동학혁명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동학기행단’이란 이름으로 기획해 운영했다.
2006년 일본인 25명의 참여로 시작된 ‘일본 동학기행단’은 지난해까지 292명이 방문했다. 많게는 6박 7일간 한국의 동학 유적지를 방문한 일본 동학기행단은 일본의 만행에 깊이 사죄,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부금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모금된 기금은 118만 엔(약 1171만원).
여기에 지난 2019년 나주의 12개 시민단체 등이 모여 위령비에 대한 목소리를 냈고 박 전 총장과 함께 원광대 원불교 사상연구원 등이 뜻을 모았다. 나주시와 원광대 역시 모금을 진행했고 현재까지 2000만원 가량이 모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0월에는 일본 시민들과 원광대, 나주시가 공동으로 나주동학혁명 재조명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했다. 같은 날 열린 나주 동학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훗카이도대 이노우에 카츠오 교수가 발표한 사죄문이 사죄비 비문 내용을 결정하는 바탕이 됐다.
이노우에 교수는 사죄문에서 “잔혹한 토벌전의 역사를 발굴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데 대해 일본인으로서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역사적 사건의 전모를 한국과 일본 현지에서 밝혀내고 발굴하는 작업부터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나주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관군과 일본군의 적극적인 방어로 농민들이 무참히 학살된 아픔이 새겨진 곳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이노우에 교수가 공개한 ‘쿠스노키비요키치 상등병의 종군일지’에는 “장흥부 전투(1895년 1월 8일~10일) 이후 일본군에 포획돼 고문당해 죽은 이들이 680명에 달하며 근방에는 시체로 인한 악취가 진동하고 땅은 죽은 이들의 기름으로 하얀 은처럼 얼어붙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은 “나주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이다. 그러한 나주에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 자발적인 성금을 내 세우는 최초의 사죄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진정한 사죄나 반성 없이 외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간 과거 문제에 대해 가해국이 진정으로 반성할 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모범 사례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뜻 깊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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