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무엇을 말할까? 장승업의 ‘기명절지도’, 그리고 산신도 등에 여러 사물과 함께 등장한다. 인간의 부귀와 장수를 상징한다.
또 있다. 이것은 귀한 선물로도 쓰인다. 집안의 어른에게, 어려움에 처해 있는 벗에게, 가족의 부양을 위해 애쓰는 남편을 위해 부인이 건네는 마음의 선물로 제격이다. 어떤 이는 고마운 분들에게 건강식품으로 드리기도 한다.
바로 인삼이다.
그러나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 우리의 산신도에 등장하는 인삼은 산삼일까, 라는 점이다. 대체로 산신의 손에 들린 인삼은 ‘밭에서 건강하게 자란’ 인삼의 모양이다. 일반적인 ‘가늘고 단단한’ 산삼의 모습은 아니다.
“원래 인삼은 산삼뿐이었다. 인삼이 밭에서 갓 재배될 때만 해도 그것은 가삼(家蔘)이었다. 하지만 가삼은 곧 인삼의 지위에 올랐고, 인삼은 산삼이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가삼을 쪄 만든 홍삼이 인삼과 동일한 위치에 올랐다. 홍삼은 1797년(정조21)부터 조선의 공식 무역상품이 되었다.”
건양대 총장을 역임했던 이철성 한국사학자의 말이다. 근대 경제사 분야의 저서와 논문을 써온 그는 최근에는 인삼의 고장인 개성, 금산 등지의 자료수집과 연구에 몰두한다.
이 박사가 펴낸 ‘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은 ‘인삼’을 모티브로 풀어낸 시시콜콜한 한국사 이야기이다. 모두 37개의 꼭지로 조명한 인삼의 역사와 문화에는 단순한 약초를 넘어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문화의 담지자’ 인삼을 다각도로 들여다본다.
‘고려인삼’은 신비한 양약이라는 이미지가 결합된 한국 인삼의 대명사다. 제품도 다양한데 “옛 고려 왕조의 인삼이 생산되었던 조선산 가삼을 재료로 만든 홍삼·백삼·홍삼정·인삼엑기스·인삼 드링크” 등을 포괄한다.
사실 한국인에게 인삼은 각별한 의미를 준다. 저자에 따르면 인삼 재배는 대략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자연산 산삼이 절종 위기에 처하는 시기에 시작됐다. 이후 전국으로 재배가 확대됐다고 본다.
영조의 사랑이 남달랐던 건공탕의 주인공 인삼은 산삼이었다. 정조가 화성을 일으킬 재원으로 주목했던 인삼은 홍삼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이주하는 부자들에게 가삼 무역의 독점권을 주려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광해군에서 경종 시기에 걸쳐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잇는 인삼로드를 매개로 번영을 견인했던 주인공은 다름아닌 산삼이었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6세기경 백제 인삼은 최고의 약재였다. 12세기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인삼을 소개할 만큼 인삼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하는 키워드다. 그뿐인가. 대원군의 부국강벽을 비롯해 고종의 광무개혁,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도약과 변화를 위한 든든한 재원 가운데 하나였다.
저자는 고려인삼을 매개로 “환희와 나눔, 조화와 상생의 문화”를 읽어내기도 한다. 심마니의 “심봤다!”라는 외침과 연계된 장면들이 그렇다. 산삼을 발견한 이가 외치는 “심봤다!”는 기쁨의 분출이지만 그러나 심마니는 산삼을 캐고 난 뒤 동행한 이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나눠준다. 다시 말해 “소망 보시오!”라는 외침은 나눔과 조화를 상정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고려인삼은 모든 약초의 으뜸이었지만 ‘독불장군’이 아니라 다른 약재와 함께 ‘섞여야’ 더욱 빛을 발했다. 인삼이 한나라 유방의 신하 소하(蕭何)에 비유되고, 대황이 범려와 한신(韓信)에 감초가 사마광(司馬光)에 비유되었던 것은 고른 인재 등용의 깨우침을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사실 인삼은 스스로 이름을 붙인 적이 없다. 다만 사람의 모양을 닮아 인삼(人蔘)일 뿐이며 “얼마나 닮았느냐가 품질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오래되고 잘생긴 산삼은 동자로 변신해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푸른역사·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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