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출제 교사가 맡기엔 역부족
광주 고교 최근 3년 484건 재시험
교육청 공동 문제서 골라 쓸수있게
교원연수 전문성 강화 방안도 시급
광주지역 고교 고사관리 실태는 이미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학부모, 전문가, 시의회까지 나서 숱하게 부실한 평가 체계, 교사의 전문성 결여 등 내신 관리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되풀이 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이 광주시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부실한 고사관리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3년새(2017~2019년) 광주지역 67개 고등학교 중 62곳(92%)에서 무려 484건의 재시험이 치러졌다. 부실 출제 때문이었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지난 2018년 한 해에만 무려 15건의 재시험이 치러질 정도로 고사 관리가 엉망이었다.
지난 7월 광주 모 고교 시험지 해킹사건 조사과정에서 담당 교사가 생명과학 과목 시험에서 무려 4개 문항을 잘못 출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에는 광주의 사립고교에서 ‘독서’ 교과 시험 출제를 맡은 교사가 사설 문제은행 사이트에서 26문항 중 13문항을 베껴 출제하는 황당한 사례가 발생했다.
시교육청은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교사 역량강화, 지도감독 내실화 등 예방책을 내놓았지만 교단은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교사가 타 기관의 시험문제를 노골적으로 베끼는 등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지경이 됐다. 이번에도 시교육청은 맞춤형 평가 연수 의무화, 학교·학년 단위 평가 역량 제고 교원 연수 의무화, 출제 역량 강화 연수 강화 등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교육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의 뻔한 대책만으로 고사관리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단계를 넘었다고 진단한다. 고사 관리 문제를 학교와 교사에게 맡기는 현행 정책을 손질해야 할때가 됐다는 것이다. 더 이상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출제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제은행식으로 바꾸는 방안이 거론된다. 시교육청이 주관해 교사들이 문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시험시기에 따라 문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출제와 검토에 시간을 구애 받지 않아 오류를 줄이고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광주교대의 한 교수는 “시험 문제 출제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문제 베끼기와 부실 문항 출제가 반복된다는 것은 교사들이 시험출제를 맡기에 역부족이라는 신호”라며 “고사관리를 학교, 교사에 맡길 게 아니라 시교육청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시교육청 주관으로 교사들이 공동출제해 우수 문항을 골라내고 교사, 학교가 문항을 선택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은행 출제 방식을 도입하되,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지역 사립대학의 한 교수는 “중간고사는 학교마다 진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기말고사만이라도 문제은행 방식을 채택하는 방안도 가능하다”며 “이젠 국가, 교육청이 나서 고교 내신 문제를 다뤄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광주 고교 교사들의 각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력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회복하는 등 본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기관이나 사설 입시업체의 문항을 베끼는 것은 교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이번에 문제가 된 교사는 학생들이 주로 보는 ‘EBS 수능 특강’에서 문제를 베끼는 등 무감각과 무성의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정치학회장을 지낸 한 교수는 “1990년대 수능이 도입됐을 때 고교 교사들이 중간·기말 고사에서 수능형 문제를 출제할 역량이 부족해 사설 학원 문제를 베끼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아직까지도 교사들이 시험문제를 베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 교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태를 보여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교육청에서 진행한 교사 전문성 강화 연수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동안 시행한 교육청의 시책이 현장에서 겉돌고 있어서다.
사립학교 수학담당 교사를 지낸 한 퇴직교사는 “교사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연수를 지금까지와 달리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해야할 필요가 있다. 현행 방식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결과로 드러난 만큼 교육청에서 지금까지 시행한 교원연수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교사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학 관리처장을 지낸 수도권의 한 교수는 “문제 베끼기는 특정 학교나 교사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광주 고교교육을 불신하는 악영향을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내신성적을 의심받는 특정 지역 학생들이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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