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 저항하다 숨진 조선대생 정선엽 병장
국방부 벙커 근무…제대 3개월 앞 12·12 발발
공수부대원들이 총 빼앗으려하자 맞서다 숨져
순직→전사 인정…형 훈채씨 “이제야 명예회복”
조선대, 명예 졸업장 수여 등 추모 사업 진행
“매년 오늘(12일)만 되면 국가를 전복하려는 전두환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하던 동생이 생각납니다”
조선대학교 학생이던 고(故) 정선엽(당시 23세·국방부 헌병대 소속) 병장이 지난 1979년 12·12 사태 당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연결하는 지하벙커 초소에서 초병으로 근무하던 중 무력진압에 나선 1공수여단의 총탄에 쓰러져간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43년 만에 정 병장의 죽음을 국방부가 정식으로 ‘전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유족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지난 7일 정 병장의 형 훈채 씨는 국방부로부터 동생의 ‘전사확인서’<사진>를 받았다.
43년의 시간이 흘러 동생의 죽음이 12·12 군사반란군에 맞서다 숨진 것으로 확인돼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 된 것이다.
이번 전사확인서는 지난 3월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가 정 병장이 ‘12·12 군사반란’ 당시 군 복무를 하면서 국방부 B-2 벙커에서 반란군에 대항하다가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인정하고 국방부장관에게 사망구분에 관한 사항을 전사로 재심사할 것을 요청하도록 결정한데 따른 것이다.
영암군 금정면이 고향인 정 병장은 3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 병장은 어린시절부터 총명한 탓에 바로 위의 형인 훈채씨와 둘이 광주에 나와 유학생활을 했다.
집안이 어려워 훈채씨는 광주상고를 다니다 바로 은행에 취업해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고, 부모님과 형의 바람을 알던 정 병장은 조대부중, 동신고를 졸업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의협심이 좋고 애국심이 남달랐던 정 병장은 동신고 재학당시부터 ‘흥사단’ 활동도 해왔다. 조선대 전기공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정 병장은 자원입대를 했고 태권도를 하고 덩치가 좋았던 탓에 서울 용산 국방부를 지키는 헌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를 석달 앞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등 신군부의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13일 새벽 신군부 주요 인물인 박희도 1공수여단장이 지휘하는 공수부대 병력이 국방부를 점령하려고 몰려온 것이다.
13일 새벽 1시40분께 국방부를 점령한 공수부대원들이 정 병장의 엠(M)-16 소총을 빼앗으려 하자 정 병장은 “중대장의 지시 없이는 줄 수 없다”고 맞섰고, 이 과정에서 정 병장은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목과 가슴에 4발의 총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1공수여단이 기록한 당일 작전일지에는 “벙커 출입구 헌병 근무자 2명 중 1명 체포, 1명은 반항 사격과 함께 벙커로 도주 사살됨”이라고 기록돼 있다.
국방부 헌병중대역사록에도 “B-2벙커 입구 근무자인 병장 정선엽은 소지하고 있던 개인화기 (M-16)를 압수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다가 1공수 진주병력에 의해 사살”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 병장은 사망구분은 ‘순직’으로 기록돼 있었다.
군 인사법 상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43년 동안 정 병장은 전두환 세력의 쿠데타군에 대항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변경으로 정 병장의 형 훈채 씨는 “이제서야 동생이 명예가 회복돼 자랑스럽다”면서 “하지만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간 전두환이 12·12뿐 아니라 5·18에 대한 사죄의 한마디도 없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괘씸하다”고 말했다.
이어 “매년 12월 12일 마다 전두환은 자기의 부하들을 데리고 영화를 누리며 만찬을 벌였지만, 그들의 총과 칼에 죽은 이들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난 것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다”고 분노했다.
한편 정 병장의 동문들은 지난 2017년 동신고에 정선엽 병장을 기리는 기념식수를 진행했고, 이어 조선대에서 정 병장의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하는 등의 추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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