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0일 개봉 임찬익 감독의 ‘영화감독 노동주’ 실제 주인공
조선대 환경공학과 입학 후 토익 만점부터 자격증 10여개 등
시력 완전 상실하고 영화감독 길로…단편 영화 4개 제작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죠. 꿈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됐지만 수 없는 노력과 일어섬 끝에 꿈을 이룬 광주의 한 시각장애인이 있다. 주인공은 노동주 영화감독.
이달 30일에는 노 감독을 주제로 한 임찬익 감독의 ‘영화감독 노동주’가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한다.
노 감독은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던 아버지를 따라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처음 접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는 풍족하지 못한 집안 사정을 위해 우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진 뒤 영화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애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노 감독은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기 위해 학교 운동장을 가다가 순간 자리에서 픽 쓰러졌다.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뜬 노 감독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명을 진단받았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공부에 열중하다가 그날 밤 시신경이 모두 손상돼 명암 구분만 가능한 수준의 시각장애인이 돼 버렸다.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구십냥이라고 하잖아요.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때는 시각을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응원 덕분에 머지않아 털고 일어날 수 있었어요.”
‘그래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수능도 봤다. 그렇게 2003년 조선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했다. 노 감독은 대학 졸업 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벽에 부딪힐 때도 친구들과 호탕하게 웃으며 넘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대학 때는 연극 동아리부터 스킨스쿠버 동아리까지 가입하며 가능성을 키워갔다.
노 감독이 보유하고있는 자격증은 한자 1급을 비롯해 워드 1급, 정보처리기사, 대기환경기사 등 10개가 넘는다. 모의토익에서는 만점을 받았고 조선대학교에서 단 한명에게만 수여하는 백악장학생에도 선정된 바 있다.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시각장애인 신분으로 취업은 쉽지 않았다. 10곳의 회사에 서류를 넣었지만 단 한곳에서만 합격했다. 합격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 신입생 훈련이 있던 날,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팀원들과 날밤을 새며 연구하던 중 남은 시신경까지 손상돼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것. 이를 알게 된 회사는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며 통보했다. 그 길로 그는 시각장애특수학교인 세광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노 감독은 물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아이들의 답은 천진난만했다. 의사부터, 애니메이션 성우 등 다양했다. 노 감독은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문득, 오랜 꿈이었던 영화감독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길로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았고 카메라 잡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워갔다.
그렇게 노 감독이 만든 영화는 데뷔작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를 비롯해 단편 영화만 4개. ‘한나의 하루’는 ‘2009 인권영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장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노 감독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싶다. 눈 하나 안보인다고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듯, 시각장애인도 해낼 수 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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