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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재기자

“아들아…어떻게 엄마를 장례식장으로 부를 수가 있니”

by 광주일보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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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희생 광주·전남 아픈 사연들]
서울 취업 좋아했는데…취업턱 내러갔다 참변
집안에서 똑부러지는 맏아들
장례식장 부모도 친구들도 비통

광주시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에 이태원 참사로 명을 달리한 오모(24)씨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최악의 이태원 핼러윈 압사 사고로 광주·전남에서도 꽃다운 청춘들이 꿈도 펴보지 못하고 스러졌다. 청춘을 잃은 슬픔에 유가족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피맺힌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불과 두 달 전 좋은 데 취업했다고 자랑했던 아들이 그렇게 뿌듯했었죠. 군복무도 마치고 취업도 했으니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31일 오전 김모(29)씨가 안치된 광주시 동구의 한 장례식장은 적막한 가운데 소리없는 흐느낌만 이어졌다.

참사 당일 김씨는 ‘취업 성공 축하파티’를 열고 있었다. 김씨는 “토목기사들이 가장 선망하는 회사에 취업했다”며 취업턱을 내겠다고 고향 친구들을 이태원으로 불러들였다.

김씨는 집안에서 똑부러지는 맏아들이었다. 2018년 광주의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국가공인자격증 중 난이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는 토목기사 자격증을 공부 1년여만에 취득했다. 2년여가 지난 8월 초에는 서울의 유명 토목회사에 취직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 어머니는 “전날 11시께부터 전화가 안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전엔 전화도 잘 받던 아이가 왜 그러나 싶었다”며 “새벽 6시 넘어서 경찰이 전화를 받았다. 사고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수거해 보관 중이라고 했는데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 4명도 31일 장례식장을 찾아왔는데 비좁은 관에 누운 김씨를 보자 결국 주저앉아 오열했다. 광주와 순천, 포항 등 뿔뿔이 흩어져 있어도 연락이 끊이지 않던 끈끈한 친구들이었다.

사고 당일 축하파티를 마친 김씨는 친구 1명과 함께 참사 현장에 휘말렸다. 같이 있던 친구는 신발을 잃어버리고 한 다리를 다친 채 현장에서 벗어나 화를 피했지만, 김씨는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른 골목으로 이동했던 나머지 4명의 친구들은 갑자기 김씨의 행방이 사라지자 그를 찾아 새벽 내내 온 거리를 헤맸다. 참사 현장도 살펴보려 했으나 소방대원들이 통제하고 있어 발만 동동 굴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에 실종신고도 해 봤으나, 가족이 아니면 실종수사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김씨의 한 친구는 “10년동안 같이 놀았던데다 불과 엊그제만 해도 환하게 웃던 친구가 변을 당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 큰아버지도 “불과 두 달 전에 좋은 데 취직했다면서 친척들에게도 연락을 싹 돌릴 정도로 정이 많은 아이였다”며 “사람이 그렇게 많았으면 현장 통제가 있어야 했는데, 경찰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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