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끔찍한 고통에 유족들 전국 흩어져
3개월 남은 신청접수 너무 촉박
7개 시·군 유족회 통합 긍정적
사망자 한정된 배상·보상 개선
집단 매장지 발굴도 서둘러야
앞으로 2년, ‘여수·순천 10·19 사건’(이하 여순사건) 진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 진상 조사를 통해 정확한 피해 규모를 정하는 것부터 피해자 배·보상, 보고서 작성까지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여순사건 피해 신청 접수기간을 1년 연장하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지난 1월 21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전국에 신고처를 설치하고 여순사건 피해 신고를 접수받고 있다. 다만 9월 말 기준으로 접수된 신고는 3200여건에 불과해 기존에 집계했던 피해자 1만 1131명의 28.7%에 그쳤다.
유족들이 이미 고령이 된데다 연좌제 피해, ‘빨갱이’ 낙인 등을 이유로 피해사실을 숨겨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유족들은 “전국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활동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2일 전국 7개 시·군에 흩어져 있던 유족회를 하나로 뭉쳐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을 출범한 것이 대표적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종합보고서에서도 “신청기간 동안 일부 지역에서 제한된 숫자의 피해자와 유족만이 진실규명을 신청해 전체적인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힘든 조건에서 수사가 개시됐다”고 진술하고 있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피해 신청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규종 유족총연합회장은 “유족들은 여순사건의 끔찍한 기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전국으로 흩어져버렸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끌어모으는 데 1년은 너무 촉박하다”며 “피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누락된 피해자가 없도록 하려면 여순사건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해 접수 기간을 1년 연장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법상 피해자 배·보상 대상을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현재 특별법은 의료지원금 등의 배·보상을 유족도 아니고 ‘사망자’에 한정하고 있어 실제 혜택을 받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별법 시행령은 여순사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희생자의 회복을 돕기 위해 치료비, 간호비, 보조장구 구입비로 구분해 산정한 의료지원금을 지급하고, 생활보조가 필요한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해 생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위원회는 2023년부터 희생자의 신청을 받아 치료비, 간호비(월 56만2000원), 보조장구 구입비, 생활지원비 월 56만여원 등을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의료·생활지원금 지급 대상을 여순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희생자’로 한정해 문제가 됐다. 지난 6일 위원회가 공식 인정한 희생자 수는 총 45명으로, 모두 사망했다.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 의료·생활 지원을 해주겠다며 직접 피해 보상을 신청하라고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조사 보고서 기획단 구성 또한 신속히 진행돼야 할 과제라고 지목했다.
보고서 작성은 위원회 조사가 완료된 이후부터 6개월 동안 진행되며, 추후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뒷받침 자료가 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여순사건을 조사하면서 인원 부족으로 종합 보고서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3~5명의 조사관만 투입하다보니 여수, 순천, 구례, 고흥, 보성 등 5개 지역으로 분할된 별도의 보고서만 작성하는데 그쳐 전남·전북, 경남 서부 등을 아우르는 종합보고서가 없다.
이 소장은 “조사 보고서는 국가폭력에 의한 집단 희생을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문서가 되며, 추후 피해자가 관련 소송에 휘말리더라도 든든한 방어막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여순사건의 전개 과정부터 희생자명부, 피해현황 등 구체적으로 기록해 후대에 물려주려면 책임감 있는 전문가들로 일찍부터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전문가들은 여수·순천 지역 곳곳에 숨어있는 집단 매장지 발굴도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유족 증언에 따라 여수·순천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했지만 전국 형무소와 형제묘, 위령비 등지에서만 일부 성과를 내는데 그쳤다.
암매장지는 유족 증언에 따라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74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 증언 가능한 피해자들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80~90대 고령이 된데다 남은 유족조차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므로 서둘러 증언을 확보해 발굴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 소장은 “여순 사건은 다른 국가폭력 사건보다 진척이 훨씬 늦었다. 진상 조사가 이제 막 발을 뗐으니 그만큼 더 확실하게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념에 묻혀 숨겨졌던 진실이 세상으로 드러나고 억울한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깨끗이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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