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나온 초저녁별이/지붕 끝에서 울기에/평상에 내려와서/밥 먹고 울어라, 했더니/그날 식구들 밥그릇 속에는 별도 참 많이 뜨더라/찬 없이 보리밥 물 말아먹는 저녁/옆에, 아버지 계시지 않더라.”
초여름밤, 해남 바닷가에서 안도현 시에 한보리 작곡가가 곡을 부친 ‘마당밥’이 흘러나온다. 메조 소프라노 이진진씨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를 듣고 있자니 아름다운 풍광과 노랫말, 멜로디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지난 4일 이진진 단독 콘서트 ‘장고봉로 516’이 열렸다. 공연 제목은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동네 어르신들, 멀리 외지에서 온 이들이 관객으로 참여한 이날 공연이 열린 장소는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진진씨의 집 앞 마당, 바로 바다가 보이는 소박한 공연장 ‘진진의 바다’다.
해남 바닷가 마을의 작은 무대에서 전해오는 문화 향기가 지역 문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번 하우스 콘서트는 해남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연예술단체 담소(談笑·대표 최동근)가 기획했다. 진진씨를 비롯해 공연에 참여한 이들은 광주 공연계에서 낯익은 인물들이다. ‘시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 멤버로 광주의 대표 문화행사였던 ‘포엠콘서트’를 이끌어왔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해남에서 이병채 명창(진도 국악고 교장), 이우정(장구명인), 박구영(무대감독) 등 지역 예술인, 사업가 김주호·차혜경 부부와 의기투합해 ‘담소’를 꾸리고, 한달에 한 번 일지암 등에서 꾸준히 공연을 진행해왔다.
하우스 콘서트가 열린 무대 ‘진진의 바다’는 ‘담소’의 또 다른 출발점이기도 하다. 진진씨의 집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집 한채가 있다. ‘꼬두메’로 활동했던 음악인 오영묵씨의 집이다. 바로 아랫쪽에는 이번 공연에도 참여한 멤버 첼리스트 김경일씨가 집을 지을 예정이다.
‘바닷가 공연장’은 가설무대가 아닌, 본격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정식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관람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하우스 콘서트 등을 통해 이 곳에서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서다.
‘담소’는 올해 들어 매달 회원들이 단독콘서트를 열어왔다. 한보리 등이 무대를 이어갔고 이번 진진씨 공연에 이어 국악인 이병채, 오영묵씨의 공연도 예정돼 있다.
포레의 ‘사랑의 인사’로 문을 연 진진의 단독 콘서트는 그가 즐겨 불러온 박남준의 ‘당신이 첫눈으로 오시면’, 정희성의 ‘연두’, 박관서의 ‘집’ 등 ‘시노래’들로 꾸며졌다. 동네 어르신 관객들을 위해 ‘봄날은 간다’, ‘베사메 무초’ 등도 레퍼토리에 넣었다. 진도 국악고에서 피리를 전공하는 딸 이가영 양은 독주 ‘꽃잎이 춤추던 날’을 들려줬다. 공연에 건반 강윤숙, 드럼 윤영훈, 피아노 김은영 등이 참여했다.
공연 후에는 해남 예술인들의 큰 버팀목인 차혜경 대표의 손맛을 맛볼 수 있는 푸짐한 음식 나눔도 이어졌다.
“연주자가 무대를 갖는 건 큰 로망이지요.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제가 꼭 선사하고 싶은 음악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하는 건 참 어려워요. 모든 것을 보여주게 되니까요. 저희가 해남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아주 작은 소규모 공연을 통해 마음을 나누곤 했어요. 노래를 듣다가, 이야기도 하다가, 음식도 나누다가 하는 식으로요. 그런 마음들이 참 좋았습니다.”
진진씨는 “제가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처럼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위로를 전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광주 동구 인문학당에서는 반가운 공연이 열렸다. 명맥이 끊어졌던 ‘포엠콘서트’의 부활이다. 수십년 역사를 갖고 있는 고택을 개조한 인문학당 서점에 무대를 설치하고, 관람객들은 정원에, 한옥 마루에 앉아 편하게 노래를 듣고 영상시를 감상했다.
광주시 동구청의 ‘동구인문도시 기록화 사업’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열린 ‘이성부 시인 포엠콘서트’ 역시 담소가 기획했다. ‘흐르기만 하다가’, ‘화강암’, ‘모래의 생애’, ‘익는 술’, ‘너를 보내고’, ‘좋은 일이야’, ‘풍경’ 등 이성부의 시에 한보리가 곡을 부친 시노래들이 불려졌고 해남 공연팀과 함께 황태룡(플루트), 윤영훈(퍼커션) 등이 함께 무대를 꾸몄다.
‘포엠콘서트’는 지난 1997년 서울과 광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시노래 운동 ‘시 하나 노래 하나’에서 출발했다.
지난 2003년 광주의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들의 모임’이 주축이 돼 포엠콘서트를 오랫동안 열어왔다. 공연마다 한 명의 시인을 집중조명하는 형식으로 노래를 비롯해 연주곡, 영상, 미술, 애니메이션, 연극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시킨 포엠콘서트는 지역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었다.
이날 오랜만에 열린 포엠 콘서트를 찾은 이들 가운데는 오랜 추억을 기억해내는 이들이 보였다. 또 처음 접한 관람객들은 아름다운 노래와 영상으로 변한 이성부 시인의 시를 음미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오는 9월에는 문병란 시인의 작품으로 한 차례 더 포엠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해남=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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