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물 세밀화가8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숲에서 만나는 고양이의 눈 ‘영광의 괭이눈’ 식물 세밀화를 그릴 때에 지켜야 하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나무의 경우 3년지까지 그려야 하고, 식물의 전체 모습에는 꽃이나 열매 같은 생식기관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림 속 식물은 실제 크기보다 같거나 커야 한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식물종의 특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정도라면 확대율은 기록자의 자유다. 내가 그동안 그려온 식물 중 크기가 가장 작은 종은 애기괭이눈이었다. 지상부 높이 5센티도 되지 않는 이들을 세로 30센티 이상의 종이에 확대해 그리기 위해 나는 더욱 세밀히 관찰해야 했다. 나는 3월 중순이면 괭이눈속을 만나기 위해 작업실 근처 숲 개울가 근처를 서성인다. 이들은 크기가 매우 작아 땅에 얼굴을 가까이 두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사진과 그림으로만 괭이눈을 봐온 .. 2023. 4. 15.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지금 당신 발밑의 제비꽃 지구에는 다양한 키의 식물이 살아간다. 바닥에 붙어 나는 괭이밥부터 그보다 조금 큰 꽃마리와 꽃다지, 민들레, 개나리, 상수리나무 그리고 10미터 이상의 수고를 가진 전나무와 거삼나무까지. 이 식물들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가만히 서서 개체를 내려다 보기도 하지만 땅에 붙어난 개체를 따라 몸을 뉘기도, 나보다 부쩍 큰 나무를 기록하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기도 한다. 무언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상과 같은 높이에 시선을 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감각만으로는 대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식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몸을 굽힌 채 관찰하고 있으면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은 내가 특별한 식물이라도 발견한 줄 아는지 내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와서 묻는다. “뭐 대단한 거 있어요?” 내가 관찰하.. 2023. 3. 18.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변산반도의 아네모네, 변산바람꽃 어딘가로 여행을 갈 때면 나는 늘 식물이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다닌다. 식물을 공부한 후로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 버렸다. 파리에서 요리 공부를 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을 때도 그랬다. 유럽은 식물 연구를 오래 해 온 데다 문화도 발달하여 아무리 도심일지라도 식물과 관련된 장소가 많다. 파리 주변의 식물원과 수목원, 공원, 개인 정원,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자연과학 서적을 판매하는 책방 등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더 이상 갈 만한 식물 장소가 없어지자 나는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미술관을 헤매는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앙리 마티스의 것이었다. 그의 그림 속 어느 방 테이블 위에는 몇 송이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꽃을.. 2023. 1. 22.
[이소영의 ‘우리 지역 우리 식물’] 대나무꽃의 의미, 담양 대나무밭에서 내가 그리는 식물 세밀화에는 식물이 삶에서 드러내는 모든 기관이 기록된다. 줄기와 가지, 잎, 꽃, 열매, 씨앗… 풀의 경우에는 뿌리도 그리지만 나무는 뿌리 대신 수피를 기록한다. 풀과 나무의 기록 부위가 다르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식물을 볼 때마다 우선 풀인지 나무인지부터 구분 짓게 되었다. 식물을 풀과 나무로 분류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하는지와 목질부가 있는지. 두 조건에 모두 해당하면 나무이고, 두 조건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면 풀이다. 그래서 식물의 이름만 듣고 풀과 나무를 식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는데 실은 풀이거나, 나무처럼 생겼는데 알고 보면 풀인 식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그렇다. 대나무는 이름부터 ‘나무’이지.. 2022. 12. 26.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