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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지금 당신 발밑의 제비꽃

by 광주일보 202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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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다양한 키의 식물이 살아간다. 바닥에 붙어 나는 괭이밥부터 그보다 조금 큰 꽃마리와 꽃다지, 민들레, 개나리, 상수리나무 그리고 10미터 이상의 수고를 가진 전나무와 거삼나무까지. 이 식물들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가만히 서서 개체를 내려다 보기도 하지만 땅에 붙어난 개체를 따라 몸을 뉘기도, 나보다 부쩍 큰 나무를 기록하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기도 한다. 무언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상과 같은 높이에 시선을 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감각만으로는 대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식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몸을 굽힌 채 관찰하고 있으면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은 내가 특별한 식물이라도 발견한 줄 아는지 내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와서 묻는다.

“뭐 대단한 거 있어요?”

내가 관찰하는 대상이 특산 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처럼 귀한 종일 때 사람들은 내 곁에 다가와 나와 비슷한 포즈를 취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주 흔한 식물일 때 사람들은 이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자리를 뜬다. 제비꽃을 찍을 때 흔히 겪는 일이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제비꽃은 숲과 들을 너머 도심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들풀이다. 갈라진 시멘트 틈 사이, 바위와 콘크리트 위, 벽돌 사이 등 뿌리를 내릴 만한 흙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제비꽃은 살 수 있다. 이렇듯 도시에 최적화된 식물로서 우리에게 익숙하다 보니 사람들은 제비꽃을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한다. 제비꽃속 식물들이 분포가 넓고 개체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제비꽃속 모든 종의 사정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제비꽃속에는 40여 종이 있다.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이우철 선생은 우리나라에 38종 2변종의 제비꽃속이 있다고 밝혔으며, 이창복 선생은 대한식물도감(2006)에 43종을 기재하였다. 제비꽃속은 북부 고산지대부터 남부 해안지대까지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남산제비꽃처럼 분포지가 넓은 종도 있는 반면 특정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종도 있다. 낚시제비꽃, 애기낚시제비꽃, 긴잎제비꽃, 자주잎제비꽃 등은 전라, 경상남도와 제주 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경기 북부에 사는 나는 이들을 보기 힘들다.

백암산에서 긴잎제비꽃을 처음 본 때를 기억한다. 잎의 길이가 얼마나 길면 이름에 ‘긴잎’을 넣었을까 생각해왔는데, 발견 후 생각과 다른 형태에 조금 놀랐다. 긴잎제비꽃은 긴잎낚시제비꽃의 준말이며, ‘긴잎’은 낚시제비꽃의 잎보다 길다는 의미였다.

봄과 여름, 경기 북부인 내 작업실 주변에서는 호제비꽃과 흰젖제비꽃, 남산제비꽃, 서울제비꽃 등을 볼 수 있다. 제비꽃이라고 다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같은 종일지라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잎의 형태와 크기, 꽃의 색과 줄기의 길이 등이 다르다.

그래서 식물을 그림으로 그리는 내게 제비꽃은 유난히 다루기 까다로운 식물이다. 식물 세밀화는 종의 특징을 드러내야 하는 그림인데, 제비꽃은 교잡이 잦아 종을 식별하기 어려운 데다 환경 변이가 무척 다양하여 종의 특징을 잡아내어 기록하기까지 지나는 모든 단계가 어렵다. 이들을 향한 나의 고민은 제비꽃을 더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만든다. 식물 기록자에게 제비꽃은 쉬이 지나쳐도 되는 식물이 아니라 더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대상인 셈이다.

일본의 식물 애호가인 야마다 타카히코씨는 55년간 일본 각지를 돌며 관찰한 자생 제비꽃 60여 종의 기록을 모아 최근 제비꽃 도감을 출간했다. 그는 제비꽃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중국·러시아·스페인·호주·북남미 등 세계 곳곳을 탐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토록 열정적인 제비꽃 연구자들에게 사람들은 더 특별하고 귀한 식물도 많은데 왜 굳이 제비꽃을 보러 그 멀리까지 가느냐 냉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구에는 보전이 시급한 식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식물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히 인간이 매기는 순위일 뿐, 식물 사회는 서로의 가치를 계산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지금 각자의 발밑에 피어나기 시작한 제비꽃을 향해 한 번쯤 무릎 꿇고 들여다보는 성의,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다양한 식물을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이 아닐까 싶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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