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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우리 지역 우리 식물’] 대나무꽃의 의미, 담양 대나무밭에서

by 광주일보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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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는 식물 세밀화에는 식물이 삶에서 드러내는 모든 기관이 기록된다. 줄기와 가지, 잎, 꽃, 열매, 씨앗… 풀의 경우에는 뿌리도 그리지만 나무는 뿌리 대신 수피를 기록한다. 풀과 나무의 기록 부위가 다르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식물을 볼 때마다 우선 풀인지 나무인지부터 구분 짓게 되었다.

식물을 풀과 나무로 분류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하는지와 목질부가 있는지. 두 조건에 모두 해당하면 나무이고, 두 조건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면 풀이다. 그래서 식물의 이름만 듣고 풀과 나무를 식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는데 실은 풀이거나, 나무처럼 생겼는데 알고 보면 풀인 식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그렇다.

대나무는 이름부터 ‘나무’이지만, 실상 부피 생장을 하지 않는 풀이다. 이들은 위로는 자라되 옆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게다가 속이 텅 비어 있어 나이테가 없다.

지난봄 담양의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 가까운 대나무밭에 들렀다. 그곳에는 왕대가 자라고 있었다. 밭 입구에는 담양에서 재배되고 있는 왕대와 솜대, 맹종죽, 신이대 등 담양에서 재배되고 있는 종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왕대가 뒤엉킨 연둣빛 숲을 지나 어느 구역에 다다르자 갈색을 띤 대나무 군락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던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죽은 것 같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물이 부족해 마른 것 같다고 했다. 그곳에 다가가 대나무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들은 시들거나 죽은 게 아니라 갈색 꽃이 핀 것이었다. 왕대의 꽃은 녹색의 사마귀 같은 형태로 피어 난다. 이곳의 왕대꽃이 갈색인 이유는 꽃이 핀 지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왕대꽃이 우리 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든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대나무의 꽃은 70~120년에 한 번 핀다고 알려진다. 일본 사람들은 대나무에 꽃이 피면 동네에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어 왔다. 대나무에 꽃이 피는 일이 아주 희귀하기도 하지만, 전쟁과 자연재해로 늘 위기를 맞았던 일본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식물이 대나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직하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이 식물은 일본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운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가 담양 왕대밭에서 꽃 사진을 찍자 지나던 관광객들이 이게 뭐길래 사진을 찍냐 내게 물었다. “이거 대나무 꽃이에요. 백 년에 한 번 피는 귀한 거예요.”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은 것 같다며 모두들 지나친 식물은 어느새 사진을 찍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귀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담양에 다녀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용인의 한 미술관 정원을 거닐다 사람들이 왕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 이곳의 왕대도 꽃이 핀 것일까?’ 반가운 마음에 왕대 군락에 다가서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대나무 꽃이 피면 누가 죽는다던데, 꽃이 많이도 피었네. 무슨 일이래.” 나는 불운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실은 대나무꽃이 행운을 상징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내가 담양에서 본 왕대와 용인에서 본 왕대는 비슷한 시기, 같은 형태의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행운과 불운이라는 상반된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나무는 대나무일 뿐이며, 꽃은 식물 삶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간의 문제는 과도한 의미 부여,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복잡하게 생각하는 데에 있다. 식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같은 자연 현상을 보고 희망을 품는 사람과 불운을 예견하는 사람들 속에서 흔들림 없이 현상 그 자체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 나가는 일인 것 같다.

결국 의미라는 것은 어느 대상이 가진 고유의 성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 부여받게 되는 것이란 걸 대나무를 보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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