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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시인11

[서효인의 소설처럼]북해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찾다 -우다영 장편소설 ‘북해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저잣거리의 마당놀이까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여러 사람을 홀려왔다. 많은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홀림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최초의 이야기는 아마 말 그대로 이야기였을 것이다. 입에서 귀로, 귀에서 생각으로, 그 생각이 다시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구전(口傳)이라고 부른다. 문자를 쓰기 시작하고 인쇄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야기는 이제 글로 남겨진다. 그러나 문자는 상당 시간 종교적·사회적인 쓸모로 복무하였다. 그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글자가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소설’이라는 장르는 근대 문화의 소산으로서, 소위 부르주아나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였다. 소설의 시대 이후 얼마 있지 .. 2022. 1. 1.
[서효인의 소설처럼] 작고 단호한 연대-이유리 ‘왜가리 클럽’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양미네 반찬’은 지난달 10일에 망했다.” 우리가 아무리 ‘죽겠다’와 ‘망했다’를 입에 달고 사는 부정의 민족이라 하더라도 실제 사업이 망하는 것은 말버릇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이다. 주인공의 사업은 안타깝게도 지난달 10일 해당 관할 구청에 폐업신고를 했다. 처음부터 망할 기미나 징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개업 초기에는 장사도 꽤 잘되었다. 입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반찬도 열심히 만들었다. 이런저런 마케팅에도 힘썼다. 그러나 개업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매출은 하향 곡선을 그렸고, 점점 줄어들던 수입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내리막길이었다. 몇 달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버텼지만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리였다. 그렇게 양미네 반찬은 망해.. 2021. 10. 10.
[서효인의 ‘소설처럼’] 서러운 역사를 읽다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영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는 ‘계관시인’이라는 게 있다. 미국에서는 매해 계관시인이 새롭게 지정되며 특별한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시가 국가의 중요 행사에 쓰이곤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한 시대를 대표한 시인에게 월계관을 씌워 존경을 표하던 전통이 지금까지 계승된 셈이다. 시인에게 월계관은 특별한 지위나 권력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언어를 대변하고 세계의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권한에 가까울 것이다. 온갖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각각의 목소리가 모두 다른 소리를 내는 작금이기에 계관시인의 존재와 역할은 그마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시가 2020년의 혼란을 함축하겠는가. 그 어떤 시인이 2021년의 군상을 예감하겠는가. 오늘날의 시인은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하.. 2021. 1. 28.
[서효인의 ‘소설처럼’] 위대한 야구 소설…필립 로스 ‘위대한 미국 소설’ 필립 로스가 1973년 출간한 장편소설 ‘위대한 미국 소설’의 원제는 ‘The Great American Novel’이다. 말 그대로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는 뜻으로서, 미국의 총체성을 뚜렷하게 밝히는, 그리하여 역사에 남게 된 소설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예를 들어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 허먼 멜빌의 ‘모비 딕’,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같은 작품을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배짱 좋은 신인 투수처럼(1973년은 위대한 소설가 필립 로스가 40세 청년이던 시절이었다.) 소설 제목 자체를 ‘The Great American Novel’로 내놓은 것이다. 졸작이거나 평작 아니, 그럭저럭 훌륭한 작품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제목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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