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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84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예전에 목포에 들렀다 예전에 목포에 들렀을 때 일이다. 유달산에 올라 보니 삼학도가 그리 작은 섬인지, 그것도 섬답게(?)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육지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다는 것도 의외였다. 유달산에는 등산로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는데, 구슬픈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알다시피 이난영의 노래다. 나는 이난영이 활약하던 동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일찍이 그 목소리를 라디오로 자주 들었다. 흔히 한 맺힌 창법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뭐랄까 중성적이 고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당시 창법은 대체로 구슬프거나 지나치게 발랄한 타입이 대종을 이루었는데, 이난영은 그런 보편적인 창법 저편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야구광인 나는 나중에 해태타이거즈 야구팀의 응원가로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걸 많이.. 2020. 8. 27.
[이덕일의 ‘역사의 창’] 죽은 친일파, 산 친일파 친일 청산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필자는 줄곧 죽은 친일파보다 산 친일파가 문제라고 밝혀 왔다. 대표적인 산 친일파가 식민사학자들이다. 이들은 아직도 조선총독부 역사관으로 가득 찬 교과서를 우리 2세들에게 강요한다. 문제는 이들이 문재인 정권 들어서 더 득세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2년 전 광복절을 맞아 이 난에 게재한 ‘광복 73년, 분단 73년’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식민사학이야말로 남한 사회의 가장 오랜 적폐인데, 촛불로 탄생했다는 새 정권 출범 1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식민사학 적폐 청산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새 정권 들어서 거꾸로 식민사학이 제 세상 만난 듯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의 .. 2020. 8. 22.
[서효인의 ‘소설처럼’] 읽기, 말하기, 쓰기 정용준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 팬데믹이 여러 사람의 일상을 앗아간 것은 당연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큰 영향력을 미쳤을 듯하다. 가령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기억할 자신의 10대는 어떤 모습일까. 범위를 더 좁혀서, 올해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전염병이 나라를 불문하여 창궐하고, 학교 수업의 비대면 영상 수업으로 대체되었으며, 여름방학은 기이하게 짧아졌는데, 거기에 기록적으로 긴 장마가 믿을 수 없게 많은 비를 오랫동안 뿌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디스토피아 소설의 세계관 정도로 여겨질 만한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특히 그즈음의 청소년에게 이것은 모두 현실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우리 앞에 실존하는 현실, 그 자체다. 정용준 장.. 2020. 8. 15.
칸트의 시간표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독일의 철학자 칸트(1724~1804)는 가죽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느 날, 칸트는 일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께 한 장의 종이를 들고 나타났다. “아버지,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아버지는 칸트로부터 종이를 받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종이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일들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저는 이제부터 집에서도 학교에서와 같이 시간을 정하고 그대로 실천하겠어요.”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대로 실천을 할 수 있겠니?” “꼭 그대로 하겠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칸트는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산책, 여섯 시에 학과의 예습, 일곱 시에 아침 식사, 여덟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는 학교생활, 학교에서 돌아오면 세 시까지 몸을 .. 2020.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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