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현수막 양성화...한곳 모아 도심미관 개선
전체 입후보자 수용 한계...실효성 없이 예산 낭비만
정부, 설치 예산 지자체 지원
‘6단 게시대’ 설치 등 잇따라
후보들간 선점 경쟁·압력에
자칫 특혜·편향성 시비 우려
광주·전남 자치단체들이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후보와 정당들을 위한 ‘정치 전용 현수막 게시대’를 설치키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도심 미관을 해치는 불법 현수막을 양성화하겠다는 의도가 읽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불가피한데다, 설치장소, 우선 게시 기준 등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 자칫 특혜·편향성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정부가 자치단체들에게 설치비로 2000만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한 사실도 전해지면서 예산 낭비 지적도 나온다.
3일 광주 5개구와 전남 기초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각 시·군·구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정치인 등 정치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 전용 현수막 게시대’ 설치를 추진중이다.
현수막을 통한 정치인들의 의정활동 보고를 가능하게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논의중인 만큼 의정활동 홍보수단으로 현수막을 활용할 가능성이 커진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현수막이 유동인구가 많은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걸리면서 도심 경관을 해칠 것으로 예상돼 관련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는 게 광주지역 지자체 설명이다.
정부도 이같은 점을 감안한 듯 대상 지자체들을 선정, 정부 예산(2470만원)을 지원하고 나섰다.
전남지역 지자체들의 경우 게시대 설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고흥군은 고흥읍과 도양읍에 한꺼번에 6개 정치 현수막을 걸 수 있는 ‘6단 현수막 게시대’를 설치키로 했다. 함평군도 정부 예산을 지원받게 된 만큼 장소 선정, 게시대 숫자 등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논란도 거세다.
당장, 정치 전용 현수막이 불법 현수막을 양성화하는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관련업계에서는 6단 현수막 게시대의 설치 가격을 1400만 원 정도로 추산했다. 정부가 지원해주는 예산 2470만원으로는 2개 설치하기도 빠듯하다는 얘기다. 설치하더라도 한 번에 12개를 걸 수 있는 게 전부다.
현수막 2개를 걸 수 있는 성인 가슴 높이 정도의 저단형(1·2단) 현수막 게시대도 1개에 300만원 가량이 든다. 8개 설치를 하더라도 고작 16개만 게시할 수 있을 뿐이다.
민주당 공천을 받는 게 사실상 당선으로 인식되는 지역 정서를 고려하면 공천을 받으려는 예비후보들 수천명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들이 홍보에 도움이 되는 현수막 게시대를 이용하려고 할 경우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현수막이 걸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후보들은 고스란히 불법적인 방법으로 게시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공천을 받겠다며 뛰고 있는 예비후보자들만 17명인 나주시장 선거의 경우 5명의 후보자의 경우 현수막 게시 순서가 두 번째로 밀릴 수 밖에 없다.
특히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만 이용한다고 할 경우 상당수 후보들의 현수막은 ‘정치 전용 현수막’에 걸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자치단체들이 유동인구가 밀집하는, 이른바 ‘목 좋은’ 지점에 ‘정치 전용 현수막’ 게시대를 설치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후보들 간 선점하려는 경쟁과 압력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선정 이후의 특혜·편파성 논란 등 온갖 잡음이 불거질 우려도 나온다.
기초자치단체장, 교육감, 시·도의원, 구의원 등 현수막 게시대 우선 사용 순위를 어떻게 정할 지도 자치단체 몫이라는 점도 추가적인 논란의 여지다.
설치 장소 결정도 순탄치 않다. 가뜩이나 불법 현수막에 대한 시민들 민원이 적지 않은데, ‘정치 전용’ 현수막이라고 반길만한 동네는 없다는 게 자치단체 관계자 귀뜸이다. 이미 유동인구가 많은 주요 도심 거리에는 현수막 게시대가 설치돼 있는 점도 해결해야할 문제다.
평소 아파트 분양광고와 다중이용시설 홍보 현수막 등으로 민원이 끊이질 않는 광주시 북구 중흥 3거리에서 만난 주민 A씨는 “평소에도 불법 현수막으로 남아나는 느티나무들이 없다”며 “친환경적인 것도 아닌데, 도심미관 개선을 위해 현수막을 없애앨 생각을 하지는 않고 정치 전용 현수막 게시대를 만든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꼬집었다.
기우식 참여자치 21 사무처장은 “현수막은 도심 속 골칫거리로 자리잡은 지 오래” 라며 “선거철 이외에는 의정활동을 홍보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현수막이 담아낼 수 있는 메시지와 내용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정치 전용 현수막 게시대 설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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