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편의점 사람들 -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동네마다 편의점이 있다. 아니,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다. 1990년대 일종의 신사업으로 등장한 편의점은 최근까지 확장 일로였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로서 규모의 경제에 성공해 슈퍼마켓은 물론 구멍가게와 소형 마트까지 접수하였고, 이제는 그 숫자와 밀집도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상권이 위축되면서 편의점도 그 활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2020년 기준 전국 편의점 숫자는 4만 개가 넘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하루면 배달이 완료되는 인터넷 몰도 우후죽순 생겼다. 이렇듯 경쟁은 심해졌고, 인건비와 기타 비용은 상승하는 동시에 24시간 운영이라는 족쇄는 여전하니, 동네 장사라고 하여 마냥 편하고 안정적일 리가 없는 것이다.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주된 공간인 청파동 골목의 편의점 ‘올웨이즈’(ALWAYS)에도 편의점의 역사와 풍파는 비켜 가지 않는다. 편의점의 경영자는 염영숙 여사. 평생 교사로 일했고, 은퇴 후 편의점을 창업했다. 편의점으로 대단한 돈을 만지기도 어렵고, 자주 들고나는 아르바이트 인력과 갖가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소소하게 벌어지지만, 합리적이고 포용적이며 예상 가능한 태도로 편의점을 운영한다. 작은 편의점이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일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생계와 사정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가게나 주인의 상황보다는 그보다 약자인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한다. 편의점도 주인의 성정을 닮는지, 우리의 이웃을 따스하게 품는다. 작금의 편의점처럼 도시락과 컵라면을 먹을 수 있고, 몇몇 음료를 투 플러스 원에 팔지만, 지난날 슈퍼마켓처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정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인생이 있다. 누군가는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는데, 불편한 편의점에서는 ‘정신이 공간을 바꾸는’ 셈이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바꾸는 정신의 두 번째 인물은 독고 씨다. 소설의 가장 주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독고 씨는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역의 노숙자에 불과했다. 심지어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으며,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염영숙 여사는 기민하고 담대한 경영자답게, 독고 씨의 우직한 호의와 친절에서 그의 잠재력을 금세 알아봤다. 독고 씨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이 변화를 동시에 일으킨다. 독고 씨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조건은 단 하나, 금주다. 알코올 중독과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받는 그에게 금주는 어디든 근무를 하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을 터, 독고 씨는 이 약속을 철저하게 지킨다. 술이 먹고 싶을 때는 편의점에 비치된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서, 옥수수수염차의 효능을 발견한다. 그리고 편의점의 사람들에게 옥수수수염차를 권한다. 힘들 때 마시라고. 대화할 때 마시라고. 마시고 잠시 쉬라고.

‘불편한 편의점’과 야간 아르바이트 독고 씨, 그가 권하는 옥수수수염차는 편의점을 둘러싼 사람들의 여러 긴장과 갈등을 어렵지 않게 이완시키고 해소한다. 현실에서의 문제가 이렇듯 쉬이 해결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서 이러한 갈등의 부재 혹은 소거가 다소 비현실적이거나 판타지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이 작품을 독해하게끔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우리에게 충분한 위안과 치유를 준다. 독고 씨는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행동을 찾아, 그 행동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됨을 일깨운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가족과 충분하고 솔직한 대화의 시간을 갖고, 사과할 때 사과하고, 용서할 때 용서하는 것이다. 편의점의 동료와 손님과 이웃은 독고 씨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을 비로소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독고 씨다. 기억을 되찾고, 대화하고, 사과하기.

편의점에 모인 사람은 전부 달랐다. 올곧고 바른 사람, 재치있고 섬세한 사람, 책임감 있고 정직한 사람이 있다. 물론 약자에게 최선을 다해 진상인 사람, 질투하고 뒷말을 남기는 사람, 게으르고 고집불통인 사람도 있다. 모두 다르기에 세상은 편하지 않고 불편할 것이다. 그들이 모이는 편의점 또한 편한 편의점이 아닌, 불편한 편의점이다. 편의를 편하게 볼 수 있어 편의점인데, 불편한 편의점이라니……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의미심장하다. 그 아이러니를 편의점이라는 소설 속 공간이 감싼다. 독고 씨를 비롯한 편의점의 인물이 해낸 것이다. 역시 정신을 지배하는 건 공간이 아니었다. 정신은, 그 공간의 사람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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