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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옛날 국수 공장을 가다

by 광주일보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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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오래된 국수 공장을 간 적이 있었다. 치렁치렁한 국숫발을 햇볕에 내다 말리는 광경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주인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누가 요새 이런 국수 사 먹나요. 마트에 가면 싼 국수가 널렸는데.” 낡은 기계였다. 어린 시절에는 국수 가게가 동네마다 여럿 있었다. 아마도 경쟁도 했을 것이다. 어느 국수 가게가 더 맛있는지, 더 싼지 놓고. 이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가게다. 주인이 낡은 철물로 된 기계를 돌려서 밀가루 반죽을 해서 기계에 걸었다. 해소 기침하듯, 기계는 쿨럭이며 돌아갔다.

“기계 부속을 구할 수 없어서 직접 깎아 만들거나 한다우. 이제 다 된 기계지.”

공장은 불량이 없어야 하고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생산성 면에서 이런 가게는 할 말이 없다.

“많이 만들어 봐야 팔 데도 없고. 그저 이 기계 고장 나기 전까지만 하려고 해요.”

그는 인근 지역에 몇 개의 가내 국수 공장이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가끔 전화 연락이 오면, 누군가 그만두는구나, 하고 알아듣는다고 한다. 다행히 레트로며 복고풍을 타고 언론에 소개되어 손님이 근근이 이어진다.

“동네는 죄다 아파트로 바뀌고 재개발되어 단골이 거의 없어요. 젊은 분들은 이런 국수 공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한때 이 골목에 사람이 많이 살았고, 그들이 다 우리집 국수를 많이 먹었지만.”

주인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나마 요즘은 꽤 바쁜 편에 속한다. 역시 언론이다. 동네 손님은 거의 사라졌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된 걸 보고 멀리서 찾아온다. 그 덕에 하루도 쉬지 않고 생산을 하기는 한다. 국수값이 역시 마트보다 다소 비싸다. 손국수의 수고를 생각하면 비싼 건 아닌데, 뭐든지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에 잘 먹히지 않겠지 생각하니 쓸쓸해진다.

“국수는 요새가 대목이에요. 여름에 팔 걸 미리 만들어야 해요. 여름에 비빔국수를 많이 먹었잖아요. 장마철이 오기 전에 다 만들어 놔야 해요. 비가 오는 철이 되면, 대개 생산을 안 해요. 말릴 수가 없으니까. 태양 믿고 만드는 국수지요. 하느님과 동업하는 거예요.”

장마철, 여름 다 끝나고 가을볕이 좋아질 때쯤 다시 만든다고 한다. 그때까지 쌓아둔 재고가 다 소진되기는 할까.

“뭐, 언제까지 할지도 모르는데 가을 일을 지금 걱정은 안 해요(웃음).”

밀가루 봉지 같은 갈색의 종이에 둘둘 말린 국수를 보니 반갑다. 우리는 늘 잔치국수를 먹어왔으니 거기서 거기 같은데 미세하게 유행이며 모양이 바뀌고 있다. 우선은 가내공장이 급격히 줄어서 전국적으로 스무 개가 안 되는 듯하다. 있는 가게도 하루가 다르게 없어지고 있다. 다음으로는 면의 굵기다. 예전의 가느다란 소면(小麵) 또는 세면(細麵)은 요새 명함도 못 내민다. 마트에 가면 대형 공장에서 생산하는 아주 가느다란 면이 대세다. 옛날엔 소면이었던 것이 요새는 중면이라고 부른다. 또 ‘우동면’이라고 부르던 굵은 면은 거의 안 팔린다. 마트에선 사기도 힘들다. 작은 가내공장에나 가야 조금 볼 수 있다.

“옛날엔 이런 굵은 국수를 많이 먹었는데, 요새는 가는 걸 더 좋아하지요.” 국수는 반죽기로 치대어서 쫄깃해지고, 그 반죽을 몇 번씩 접어서 포개고 다시 접고 하는 과정에서 더 쫄깃함을 얻는다. 그걸 기계에 걸어 국수를 뽑는다. 냉면은 반죽을 기게에 넣고 압력으로 눌러 뽑는다. 그걸 압출면이라 한다. 잔치국수를 만드는 방식은 압연 절면이라 부른다. 눌러서 자른 면이란 뜻이다. 칼국수도 같은 방식이다. 잔치국수는 다만 기계의 힘을 빌려서 나오는 산업화된 국수를 의미한다. 이런 소면, 세면은 1950년대 이후 밀가루가 싸게 공급되면서 우리 음식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중국, 일본 등에 비슷한 국수가 있긴 한데 우리 잔치국수는 거의 독보적이라 할 만큼 크게 발전했고, 많이 먹어왔다. 잔치국수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특이하다. 결혼식이나 잔치에서 흔하게 이 국수를 먹었다. 싸고 대접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결혼식 피로연이 뷔페로 바뀌면서 이런 가내 수공 국수 공장이 제일 큰 타격을 받았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가는 잔치국수. 갑자기 울컥해진다.

전국에 가 볼 만한 이런 가내 국수 공장이 몇 있다. 구룡포의 제일국수공장, 예산의 쌍송국수공장, 그리고 위에 나온 집은 서울 중랑구의 용마산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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