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과 영산강이 없었다면 광주라는 도시가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을 일이다. 광주에 머물렀던 선사인들의 흔적은 영산강변에 있다. 씨를 뿌려 농사를 짓고 도구를 만들고 옷과 집을 지어서 살았다. 그리고 춤과 노래로 하늘과 땅에 감사했다. 영산강 주변에 모인 크고 작은 집단은 국가를 이루어 백제와 다른 마한이라는 세력을 형성했다. 새로 들어선 상무지구나 수완지구, 첨단지구 역시 영산강상류에 만들어진 도시들이다. 무등산 안으로도 도시가 확대되었다. 호환을 두려워했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다.”(본문 중에서)
광주의 자연환경을 거론할 때 첫손에 꼽히는 것은 ‘무등산’과 ‘영산강’이다. 예나 지금이나 영산강과 무등산은 광주의 본질적인 터전이다. 근대 이전에는 의식주의 공간으로 이후로는 힐링, 자연 경관 등의 가치로 주목을 받는다.
광주를 일컫는 의향, 예향, 미향은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삼향’(三鄕)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수사는 없다. 5·18과 의병, 남종화와 남도소리, 남도의 맛과 게미는 외지인도 인정하는 광주만의 자산이다.
광주 속살을 낱낱이 들여다보면 그것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무등산 아래 급이 없이 어우러지는 도시, 영산강과 이웃한 도시,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 광주를 보게 된다.
‘섬문화 전문가’ 김준 박사는 곡성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기 무렵 광주로 이사 왔다. 이후 줄곧 광주에 살면서 광주는 물론 전남, 전북을 오가며 역사와 문화, 생태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이번에 김 박사가 펴낸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광주’는 정체성이 견고한 의향이자 도시 곳곳에 예와 미가 넘치는 광주를 이야기한다.
먼저 저자는 ‘도도히 흐르는 광주정신’에 초점을 맞춘다. 광주 중심 상권인 충장로는 의병대장 김덕령의 호에서 연유한다. 제봉로와 죽봉로도 의병장 호를 딴 도로명이다. 광주에 의병장 이름이 도로로 명명된 것은 의로운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광주 청년들은 화순 너릿재를 넘어 운주사와 조광조를 찾곤 했다. 정형화된 틀과 제도를 초월하고자 하는 민중의 염원을 거기에서 찾았다. 민중의 염원은 광주 정신의 한 축이자 미래 도약의 토대였다.
저자의 발길은 도시의 역사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향한다. 지금은 사라진 역사 공간 경양방죽과 광주읍성을 비롯해 근대화의 요람인 양림동, 광주 최초 도시공원인 광주공원도 둘러본다.
요즘 ‘길 위의 인문학’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강좌와 답사가 혼합된 프로그램의 기원은 ‘누정’에서 찾을 수 있다. 광주와 전남의 누정은 약 600개가 넘는데, 사라진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2500개에 달한다. 풍암정, 취가정, 환벽당, 풍영정 등 광주 누정의 역사와 가치 등을 보여준다.
저자는 도시의 산책을 통해서도 광주의 모습을 들려준다. 1913송정역시장과 전통시장들, 도시재생의 모범답안과도 같은 푸른길 공원,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광주의 경리단길 동명동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주민들과 청년이 만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펼치는 청춘발산마을,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 광주극장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책에는 남도의 맛과 풍류, 기억해야 할 인물에 대한 글들도 포함돼 있다. 남도음식의 집합체인 한정식, 떡을 치듯이 만들어낸 송정떡갈비, 광주 맛의 진수 김치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이밖에 ‘쑥대머리’를 부른 국창 임방울, 조선 왕을 가르쳤던 기대승, 남종화의 거목 허백련, ‘나두야 간다’의 시인 박용철 등을 매개로 광주의 예와 풍류를 가늠할 수 있다. <가지·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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