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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40년간 하루도 잊은적 없는 장면 목탄으로 그렸죠”

by 광주일보 202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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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주년 문화로 만나다 <1> 24년만에 5월 신작전 갖는 강연균 화백

 

작품 한점 한점의 포장이 벗겨져 눈 앞에 나타날 때마다 작은 탄성이 나왔다. 검은색 목탄으로 그려진 작품들은 강렬했다. 붉은 피가 고인 헬멧과 먹다남은 빵 한 조각, 수레를 끌고 가는 두 남자, 총알이 박힌 우체통. 전시 서문을 쓴 이태호 명지대 명예교수의 “흑백 화면들은 신들린 듯 거친 대로 기억들이 세차게 출렁이고, 그 때 오월의 정황을 뚜렷하게 되살려냈다”는 말처럼 7점의 작품은 곧바로 우리를 ‘오월 그날’로 데려다 놓는다. ‘회화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강연균 화백(80)이 ‘오월 그림’을 선보인다. 오는 5월7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5’를 통해서다. 광주를 그린 최초의 회화작품으로 꼽히는 1981년 작 ‘하늘과 땅 사이-1’을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전시한 데 이어 지난 1995년 4번째 시리즈를 선보인 후 24년만이다.

 

강연균 화백

지난 주말, 전시가 열릴 ‘예술공간 집’(광주 동구 제봉로 158번길 11-5)에서 강화백을 만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전시작들은 지난해 11월 5·18기록관 주최로 열린 시민집담회에서 하룻동안 소개됐던 작품이다. 뒤늦게 인터넷에서 몇몇 작품을 본 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은 진한 감동을 느꼈고 예술이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 지난달 강 화백을 찾아가 전시를 청했다.

기록관측에서 5·18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을을 때 40여년전의 기억을 다시 뱉어내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광주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두 나 정도는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말로 하는 대신 나는 ‘환쟁이’니까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죠. 그날 이후 40년간 마음에 담긴 ‘어떤 장면’들이 있었으니까요. 한달여만에 무언가를 쏟아내듯 치열하게 그려나간 작품입니다.”

 

‘박용준의 피’
광주우체국 우체통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20호 크기의 7점이다. 작품에는 5월19일부터 27일까지의 생생한 장면들이 담겼다. 그가 보고 느끼고 가슴에 담은 장면들이다.

1980년 5월22일 그는 전남도청으로 갔다. 아내가 준비한 김밥 한 박스와 삶은 달걀 한 박스를 자전거에 싣고 들어갔고 시민군들은 너도나도 김밥을 집어들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관 뚜껑을 열어둔 무명열사의 관이 보였다. 어디선가 스님의 목탁소리도 어렴풋이 들렸다. 계엄군이 총격이 있던 27일 아침, YWCA를 찾아갔다. 2층 입구 창문,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시민군(박용준)의 자리에는 덩그라니 헬멧이 놓여 있었다. 현관 앞 계단엔 붉은 피가 선연했다. 그날 아침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 우체통은 수많은 총탄 흔적들로 처연했다. 자택이 있던 신우아파트에서 리어카에 시체를 끌고 가는 두 사람의 모습도 보았다. 이 장면들이 모두 작품에 담겼다.

“이번에 그린 장면들은 그날 이후 하루도 잊어버린 적이 없는 모습들이죠. 피가 흥건히 고여있는 헬멧을 보자 마음이 울컥했는데 그 옆에 다 먹지도 못한 빵 한조각이 놓여 있더군요. 그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었죠. 광주우체국 앞 우체통에 박힌 총탄 자국들은 광주사람 마음에 박힌 총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들이 가장 먼저 했던 게 ‘흔적 지우기’ 입니다. 그 우체통은 금방 사라져버렸죠.”

 

‘선혈이 낭자한 YWCA’

전시작은 모두 검은 목탄으로 그려졌고 헬멧에 담긴 피와 YWCA 계단앞의 작은 핏자국만 붉은색으로 그렸다. 강화백은 “그 때 광주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숯덩이처럼 까맣게 타 버렸고, 그 마음들을 담는데 목탄이 좋은 것같았다”며 “오래전부터 목탄을 써왔고 요즘 먹 작업 등 단색 작업을 많이 하는데다 품고 있는 생각을 꾸미지 않고 즉흥적으로 쏟아내기 위해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19일부터는 광주에 없었다. ‘광주’를 알려야한다는 생각에 서울로 갔고 한국일보 이성부 기자, 중앙일보 홍사중 기자 등을 만났다. 최쌍중 작가의 작업실에서도사람들을 만나 또 소식을 알렸다.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다시 광주로 내려온 건 22일이다. 전시작 중 논두렁에 쳐박힌 시내 버스는 순창에서 담양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목격한 것이다.

광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광주 사람으로 역사의 현장에 있고 싶었죠. 현장은 너무 참담했고 마음은 비통하고 화가 났습니다. 나약하고 왜소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죠. 나약함을 스스로 위로하고 역사에 작은 발언이라도 하자, 그게 환쟁이가 할일이다 마음 먹고 그린 게 ‘하늘과 땅 사이’입니다. 현장을 보며 ‘세상에 이렇게 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작품 제목이 정해졌습니다. 80년 그리기 시작해 81년 마무리했죠.”

강 화백의 머릿속에, 심장에 박힌 잔상 중 이번에 표현하지 못한 장면이 있다. 언젠가는 꼭 그려보고 싶은 모습이다. 금남로 장갑차 위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서 있던 ‘시민군의 모습’은 그가 만난 가장 멋진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또 1979년 작 ‘장군의 초상’도 처음 공개되며 ‘하늘과 땅 사이-1’ 제작을 위한 드로잉도 선보인다.

강 화백은 ‘오월 광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하늘과 땅 사이’ 시리즈를 이태호 교수와 함께 책으로 엮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당시 열렸던 안티비엔날레서 선보인 만장 작업인 네번째 시리즈는 ‘한국미술에서 가장 긴 설치미술’이라 불렸고 신경림, 이해찬 등 많은 이들이 함께 했었다.

한편 ‘하늘과 땅 사이-2’는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리는 40주년 기념전 ‘불혹’전에 전시중이며 시리즈 1번은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진행하는 40주년 특별전에 걸릴 예정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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