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까지 오월미술관
망태·술병바구니·독·멍석 등 전시
계란을 넣어두는 망태, 짚으로 엮은 독, 풀로 짠 가방, 짚으로 만든 술병 바구니, 널찍한 멍석···.
오월미술관(관장 범현이) 짚풀공예전에서 만나는 전시작들은 흔히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다. 오랜 세월 우리 삶과 함께였지만,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귀중한 것들이다.
전시작품을 만든 이는 짚풀공예가 김호순(72) 작가다. 옛 모습을 살린 것도 있지만, 새로운 감각으로 해석해 제작한 작품들은 생활용품으로 쓰임새가 그만이다. 마른꽃을 담아두는 화병이나 와인 주머니 등으로 쓰면 제격일 듯하다.
14일 광주 예술의 거리 김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무등갤러리 옆 지하 공간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 겸 전시장의 두터운 나무문을 밀고 들어서면 단박에 시공간을 이동하는 느낌이 든다. 작품의 재료가 되는 지푸라기와 다양한 풀들, 그리고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다양한 짚풀공예품이 한가득이다.
김 작가는 지난 2003년 이후 20여년만에 오월미술관(28일까지·동구 문화전당로 29-1)에서 열리는 초대전 ‘짚풀인생 짚풀예술’을 통해 작품 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큰 욕심 없이 시작한 전시입니다. 사람들에게 ‘짚풀공예라는 게 있다’ 이것만이라도 알릴 수 있기를 바랬네요.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사라지지 않게 지켜야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더 없이 좋구요.”
손재주가 좋았던 김 작가는 지난 1980년부터 다양한 공예 분야에서 활동했다. 양초, 매듭, 염색, 목각 등을 했고 특히 등공예 부문에서는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늘 ‘우리 것’이 아니라는 데 아쉬움이 있었고, 1990년 짚풀공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공예 작품을 만들어본 게 큰 도움이 됐지요. 등공예 엮는 방법이 짚풀과 비슷해 짚풀공예를 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응용할 수 있었거든요. 자칫하면 옛날 것을 답습하는 데 머무르기 쉬운데 이런 저런 공예품을 만들어봐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운영하는 인병선 관장과의 인연으로 서울에서 활동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한마디씩 하곤했다. “무등산이 가지 마라고 합니다”라고. 그는 짚풀공예를 하며 무엇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았던 조상들의 삶의 흔적을 접하고 깜짝깜짝 놀라고 뭉클해진다고 말한다.
“짚풀을 하면 할수록 이거는 꼭 지켜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교육적인 차원에서요. 멍석을 깔고 바닥에 지푸라기를 던져놓은 후 아이들에게 냄새도 맡아 보고 맘대로 갖고 놀아보라고 합니다. 다양한 작품도 만들어보구요. 체험 참가자들도 참 좋아하고 즐거워해요. 접해볼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요.”
김 작가는 작업 중 모르는 부분이 있을 때면 시골 할아버지들을 찾아가 배우고는 했다. 어르신들은 무엇을 전달하는 방법이 서툴다 보니 김 작가는 ‘짚풀기법 정리’를 제작했고, 이 교재로 사람들을 가르치니 효과도 좋았다.
사용하는 짚단은 유기농 재배나 낫으로 절단한 볏짚을 선호한다. 농약을 많이 쓰면 푸석푸석해지고 트렉터로 자른 볏단도 길이가 짧아 불편하다. 짚단은 시골 지인들에게 가져오기도 하고, 그의 작업을 알고 있는 이들이 추수 때가 때면 챙겨 두었다가 전달해주고는 한다. 또 띠, 왕골 등 다양한 풀도 사용한다. 최근에는 공산품으로 나오는 종이끈을 활용한 지끈공예도 진행중이다. 바늘 대신 손가락을 활용해 뜨개질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김 작가는 짚풀작품에는 조상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곡식을 넣어두는 짚독은 통기성이 좋고 습기가 차지 않아 좋다. 달걀 망태를 처마밑에 걸어두고, 산으로 약초 캐러 다닐 때는 방석을 겸한 망태기를 사용했다. 지치면 방석처럼 사용하며 앉아서 쉬고, 귀히 얻은 약초를 넣어두는 것이다. 등잔불에 사용할 석유, 산소에 가져갈 소주 등을 담던 ‘됫병’이 깨지지 않도록 짚을 엮어 만든 용품도 있다.
“모두 보기에 좋으면서도 실용적인 것들이예요.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모든 것을 그렇게 만들어쓰셨지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꾸준히 짚풀공예를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짚이나 풀을 보면 별걸 다 시도해 보는 그의 손은 투박하다. 그는 어느 순간 손을 감췄는데, 지금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웃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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