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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흑사병·십자군전쟁·마녀사냥…편견에 감춰진 중세이야기

by 광주일보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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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 남종국 지음

중세 유럽은 ‘위조의 시대’였다. 그것도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그 양이 방대했다. ‘콘스탄티누스 기진장(寄進狀)’은 당시 최악의 위조문서였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나병을 치료해준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로마 서부 통치권을 교황에게 양도했다는 내용이다. 11세기 이후 교황들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와의 다툼에서 이 문서를 근거로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문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440년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는 위조 행위를 “범죄, 살인, 재앙으로 규정”하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교회가 범죄의 주체인데 이 마당에 교황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위의 내용은 중세 지중해 문명 교류의 역사 등을 연구해온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경이로운 중세 이야기다.

남 교수의 신작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는 역사학자의 시선과 에세이라는 형식의 결합물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지중해 교역은 유럽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등을 발간했다.

콘스탄티누스의 위조 사례처럼 오늘의 관점에서 중세는 이상하고도 낯선 세계다. 일테면 이런 것이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으니 신이 만든 신분질서를 지키라고 가르친 신학자를 비롯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믿는 광신자들, 이자는 죄악이며 대부업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여긴 사람들 등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다.

책은 한마디로 ‘오해와 편견 뒤 감춰진 우아하면서도 울퉁불퉁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중세가 마냥 어두운 시대인 것은 아니었다. 찬란한 고대문명과 오늘의 현대라는 시간 사이에 놓인 시대였다.

“중세 유럽이라는 낯설고 이상한 세계를 경험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두려움도 있겠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분과 설렘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페트라르카

위의 언급처럼 책에는 흑사병, 십자군전쟁, 마녀사냥으로 각인된 중세의 어두운 이면 외에도 중세가 가진 낯섦과 특이한 면들이 담겨 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학계 중진으로서 탁월한 학술적 성취를 이룬 저자가 우아하고도 유려한 필체로 낯설고 기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역사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고 상찬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염병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이다. 중세에도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해 인구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교황이 거주하던 아비뇽도 상황이 심각했다. 4개월간 6만2000명이 사망했다는 것은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아비뇽을 버리고 떠났다. 물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사면을 해주고, 병의 원인을 찾도록 시신 해부 금지를 해제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교황의 주치의였던 기 드 숄리아크는 도시에 남아 환자를 치료했다. 안타깝게 감염이 됐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지금의 프랑스 ‘몽펠리에대학병원’이 그를 기려 ‘기 드 숄리아크 병원’이라고 명명된 것은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아울러 교회가 성행위를 통제하고 불임을 악마가 벌인 짓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의 관점에서는 기상천외한 발상이자 황당한 이야기이다.

또한 수도원 수도사들이 쓴, 마녀를 색출하고 고문하는 법을 다룬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책이 당시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중세의 기이한 이야기들은 오늘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훗날 미래의 역사가들이 오늘 우리시대의 역사를 규정한다면 아마도 “무지몽매하고, 불관용적이며, 야만스러울” 것임은 자명하다.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시대를 비교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한계와 편견을 직시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서해문집·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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