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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히 가슴 파고드는 트로트…우리 모두의 인생사
이난영(1916~1965)은 일제강점기 ‘불멸의 가인(歌人)’으로 불렸다. 60년대 ‘엘레지의 여왕’이 이미자라면, 80년대 ‘가왕’은 조용필이었다. 이난영은 두말이 필요없는 30년대 가왕이었다. ‘목포의 눈물’로 가요계 스타로 급부상했던 이난영. 노래의 배경이 된 목포는 항구, 삼학도, 유달산, 호남선 등과 같은 단어와 함께 소외와 외로움과 같은 정서가 겹쳐진다.
그러나 이난영은 불우했다. 평양 숭실전문 출신의 작곡작이자 가수인 김해송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바람기’로 평온한 날이 없었다. ‘조선 최고 슈퍼스타’였던 그녀는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눈물바람으로 밤을 지샜다.
트로트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쉽게 트로트 프로를 볼 수 있다. 트로트의 부활은 기성세대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복고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왜 사람들은 트로트에 열광할까? 트로트의 부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트로트에는 우리의 ‘한’의 정서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저자는 원래 토로트(trot)는 말이 총총걸음으로 빠르게 걷는 ‘속보’에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한다. 대중음악의 한 장르가 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미국에서 4분의 4박자 사교춤이 유행했는데 ‘폭스 트로트(fox-trot)’에서 따왔다.
이 형식이 일본 고유 민속음악에 접목돼 ‘엔카’ 형식이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기 대중가요가 이 영향을 받았던 탓에 ‘왜색’ 시비가 일었다. ‘뽕짝’이라는 비하적 명칭도 이런 연유에서 생겼다.
‘봄날은 간다’는 시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트로트 노랫말이다. 2009년 계간지 ‘시인세계’가 시인 100명에게 물은 결과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백설희의 미성과 애잔한 곡의 분위기는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그림을 펼쳐 보이는 듯한 이미지와 리듬감은 한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 1954년 노래가 나왔는데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애창된다. 백설희 외에도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최백호, 장사익, 한영애, 심수봉, 주현미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특유의 음색과 스타일로 리메이크했다. 말 그대로 ‘불후의 명곡’이다.
작사가 손로원(1911~19730)은 화사한 봄날의 이미지를 ‘봄날은 간다’라는 역설적 의미로 그렸다. ‘피울음의 정서’는 어디서 연유할까? 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조선팔도를 떠돌며 그림을 그리고 문학을 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던 어머니는 “로원이가 장가 드는 날, 내가 꼭 이 연분홍 치마와 저고리를 장롱에서 꺼내 입을 거야. 내가 열아홉에 시집올 때 입었던 이 옷을…”이라고 말하곤 했다.
‘타향살이’ 한 곡으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고복수(1911~1972). 1934년에 김능인이 노랫말을 썼고 손목인이 곡을 붙였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타향에서의 절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남북이산가족의 ‘테마송’이었던 김정구(1916~1998)의 ‘눈물 젖은 두만강’은 1970년대 이후 전국민 애창 트로트곡이 될 만큼 사랑을 받았다. 함경도 원산이 고향이었던 그는 6·25 부산 피란시절 판자집에 기거하며 빵장수, 지게꾼, 단역 출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래도 노래는 포기하지 않았다. 1980년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말년에는 가족을 따라 미국 이민을 떠났지만 1998년 “‘의식없이 누워 잠자듯이’ 강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이밖에 1970년대 전통 트로트 부활 이끈 ‘뽕짝 본색’ 조미미를 비롯해 불세출의 ‘가요황제’ 남인수, 국내 최장수 인기를 누린 ‘여성 트로트 듀엣’ 은방울 자매 등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범우·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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