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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 갔다. 호남의 관문, 한때 번성했던 상업도시. 고속열차 정차 역으로 지역 교통의 중핵이 된 곳이기도 하다. 명물 음식은 많고 많지만 황등비빔밥을 뺄 수 없다. 육회를 얹는 독특한 맛이 전국적 인기를 얻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선 오랫동안 비빔밥 문화가 있었다. 60년대 언론 기사를 보면, 비빔밥을 메뉴로 내는 식당이 많았다. 내가 직장생활 시작하던 90년대도 대중식사로 비빔밥은 아주 흔했다. 온갖 외래 메뉴와 창작 메뉴, 각 지역 음식의 각축장이 된 최근의 서울에서는 비빔밥이 왜소해졌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 몇 가지 나물과 계란, 공장제 고추장과 참기름이면 한 그릇 뚝딱하던 시중 비빔밥이 고전 중이다.
비빔밥은 매우 한국적인 음식이다. 아시아권에서도 비빔밥은 독보적이다. 중국 문화권은 볶음밥이고 일본은 덮밥이다.‘비비는’ 행위는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음식에서 ‘반’(拌)은 비빔이란 뜻이고, 실제로 깐반ㅁㅖㄴ처럼 비빔면이 많다. 짜장면도 일종의 비빔면이다. 하지만 비빔밥의 형태와 구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의 덮밥은 절대 비비지 않는다. 재료와 소스를 얹지만 매번 먹을 때마다 고명·소스·밥을 적당히 버무려 먹을 뿐이다. 한국인이 일본여행 가서 덮밥을 먹을 때 비비면 그들은 깜짝 놀란다. 심지어 덮밥은 숟가락을 주지 않아서 비비는 행위가 원천 봉쇄된다.
다른 예로 카레라이스나 하이라이스도 그들은 비비지 않는다. 숟가락을 쓰지만 한꺼번에 비비지 않고 먹을 때마다 그때그때 소량씩 밥과 카레소스를 ‘섞어’ 먹는다. 도쿄의 어느 한식당에 간 적이 있다. 20년 전이다. 당시 한식당의 돌솥비빔밥이 현지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 때였다. 놀랍게도 직원이 각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비비는 법ㅡ바로 우리가 너무도 잘하는, 모든 재료와 밥알 사이사이에 참기름 밴 고추장이 고루 섞이도록 친화적으로 통합시키는 행위ㅡ을 손님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아예 즉석에서 비벼 주기도 했다. 놀라는 일본인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당시, 그들도 카레라이스 등을 즐기므로 비비는 행위에 익숙한 줄 알았다. 전혀! 과연 한국이 비비는 밥은 독특하고 개별적 방식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뚝딱 비빔밥’을 잘하셨는데, 아마도 남은 반찬을 처리하는 요령이셨을 것 같다. 대체로 지난 끼니에 보던 반찬이 나왔으니까. 직장인이 되어 식당의 비빔밥 메뉴를 보고 나는 놀랐다. 아니, 남은 반찬을 처리하는 음식을 돈 받고 팔 수도 있구나 하는 경이였다. 물론 식당 비빔밥은 그런 의도로 만든 음식이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81년도 5월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의도에 갔다. 국풍81이라는 축제가 있었다. 볼거리 없던 시절, 전두환 불법 군부정권의 의도가 뭔지 모르던 많은 시민이 몰렸다. 기록에 의하면 그 정권의 모사꾼들이 5월광주를 희석할 의도로 기획한 것이었다. 이때 먹거리도 대거 등장하는데, 국민 통합의 기치를 내건 축제라 각 지역 음식을 중앙 무대에 끌어냈다.
전주비빔밥, 통영김밥이 전국화된 계기라고 한다. 서울에도 전주식 비빔밥 전문점이 생기고, 그냥 비빔밥에도 전주비빔밥 이름을 붙여 팔기도 했다. 뒷얘기로는, 비빔밥 하면 전주가 아닌 진주가 유명한데 이런저런 의도(군부의 호남 죄의식에 의한 밀어주기?)에 의해 전주비빔밥이 국풍81의 메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비빔밥은 그 유래와 역사 추적이 잘 안 된다. 설렁탕이 서울 도성의 일꾼들 음식으로 자연스레 생성된 정설이 있는 것 등과 비교하면 안갯속 같은 음식이다. 궁과 반가의 골동반이 비빔밥의 한 갈래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음식은 매우 비싼 재료를 쓰는 고급이다. 대중 비빔밥과는 거리가 있다. 들밥이나 새참이 원형이라고도 한다. 일하는 노동음식으로 비빔밥 원형설은 설득력이 있다. 일하고 나서 바쁘게, 없는 찬에 후딱 비벼 먹는 밥은 비빔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빔밥 유래를 추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비비는 행위는 숟가락이 주도적 식사도구(한식은 젓가락보다 숟가락이 우선으로, 아시아에서도 독보적이다)인 유일한 민족인 한민족의 습성에서 자연스레 탄생했다고 봐야 한다. 일반 밥상도, 숟가락을 들면 밥에 반찬을 넣어 곧바로 즉석비빔밥이 될 수 있다. 요새 젊은 세대의 말투로 해서 ‘비비는 데 진심인’ 민족 아닌가 말이다.
아, 비빔밥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고기 먹고 밥을 볶아 먹는 건 당대 최고의 인기 식사법이다. 한데 실은 이것이 볶음밥이 아니라 비빔밥에 더 가깝다. 요리공법상 잘 보시면, 양념에 밥과 기름을 비비는 것이지 절대 볶는 쪽이라 할 수 없다. 비비는 것은 재료의 약점을 가릴 수 있다. 빨리 먹을 수 있으며 융통성도 좋다. 비빔밥에 무슨 재료가 꼭 들어가야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간편하고 영양도 충분하다. 비빔밥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을 한 번쯤 돌아볼 시기인 듯하다.
서울에선 오랫동안 비빔밥 문화가 있었다. 60년대 언론 기사를 보면, 비빔밥을 메뉴로 내는 식당이 많았다. 내가 직장생활 시작하던 90년대도 대중식사로 비빔밥은 아주 흔했다. 온갖 외래 메뉴와 창작 메뉴, 각 지역 음식의 각축장이 된 최근의 서울에서는 비빔밥이 왜소해졌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 몇 가지 나물과 계란, 공장제 고추장과 참기름이면 한 그릇 뚝딱하던 시중 비빔밥이 고전 중이다.
비빔밥은 매우 한국적인 음식이다. 아시아권에서도 비빔밥은 독보적이다. 중국 문화권은 볶음밥이고 일본은 덮밥이다.‘비비는’ 행위는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음식에서 ‘반’(拌)은 비빔이란 뜻이고, 실제로 깐반ㅁㅖㄴ처럼 비빔면이 많다. 짜장면도 일종의 비빔면이다. 하지만 비빔밥의 형태와 구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의 덮밥은 절대 비비지 않는다. 재료와 소스를 얹지만 매번 먹을 때마다 고명·소스·밥을 적당히 버무려 먹을 뿐이다. 한국인이 일본여행 가서 덮밥을 먹을 때 비비면 그들은 깜짝 놀란다. 심지어 덮밥은 숟가락을 주지 않아서 비비는 행위가 원천 봉쇄된다.
다른 예로 카레라이스나 하이라이스도 그들은 비비지 않는다. 숟가락을 쓰지만 한꺼번에 비비지 않고 먹을 때마다 그때그때 소량씩 밥과 카레소스를 ‘섞어’ 먹는다. 도쿄의 어느 한식당에 간 적이 있다. 20년 전이다. 당시 한식당의 돌솥비빔밥이 현지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 때였다. 놀랍게도 직원이 각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비비는 법ㅡ바로 우리가 너무도 잘하는, 모든 재료와 밥알 사이사이에 참기름 밴 고추장이 고루 섞이도록 친화적으로 통합시키는 행위ㅡ을 손님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아예 즉석에서 비벼 주기도 했다. 놀라는 일본인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당시, 그들도 카레라이스 등을 즐기므로 비비는 행위에 익숙한 줄 알았다. 전혀! 과연 한국이 비비는 밥은 독특하고 개별적 방식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뚝딱 비빔밥’을 잘하셨는데, 아마도 남은 반찬을 처리하는 요령이셨을 것 같다. 대체로 지난 끼니에 보던 반찬이 나왔으니까. 직장인이 되어 식당의 비빔밥 메뉴를 보고 나는 놀랐다. 아니, 남은 반찬을 처리하는 음식을 돈 받고 팔 수도 있구나 하는 경이였다. 물론 식당 비빔밥은 그런 의도로 만든 음식이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81년도 5월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의도에 갔다. 국풍81이라는 축제가 있었다. 볼거리 없던 시절, 전두환 불법 군부정권의 의도가 뭔지 모르던 많은 시민이 몰렸다. 기록에 의하면 그 정권의 모사꾼들이 5월광주를 희석할 의도로 기획한 것이었다. 이때 먹거리도 대거 등장하는데, 국민 통합의 기치를 내건 축제라 각 지역 음식을 중앙 무대에 끌어냈다.
전주비빔밥, 통영김밥이 전국화된 계기라고 한다. 서울에도 전주식 비빔밥 전문점이 생기고, 그냥 비빔밥에도 전주비빔밥 이름을 붙여 팔기도 했다. 뒷얘기로는, 비빔밥 하면 전주가 아닌 진주가 유명한데 이런저런 의도(군부의 호남 죄의식에 의한 밀어주기?)에 의해 전주비빔밥이 국풍81의 메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비빔밥은 그 유래와 역사 추적이 잘 안 된다. 설렁탕이 서울 도성의 일꾼들 음식으로 자연스레 생성된 정설이 있는 것 등과 비교하면 안갯속 같은 음식이다. 궁과 반가의 골동반이 비빔밥의 한 갈래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음식은 매우 비싼 재료를 쓰는 고급이다. 대중 비빔밥과는 거리가 있다. 들밥이나 새참이 원형이라고도 한다. 일하는 노동음식으로 비빔밥 원형설은 설득력이 있다. 일하고 나서 바쁘게, 없는 찬에 후딱 비벼 먹는 밥은 비빔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빔밥 유래를 추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비비는 행위는 숟가락이 주도적 식사도구(한식은 젓가락보다 숟가락이 우선으로, 아시아에서도 독보적이다)인 유일한 민족인 한민족의 습성에서 자연스레 탄생했다고 봐야 한다. 일반 밥상도, 숟가락을 들면 밥에 반찬을 넣어 곧바로 즉석비빔밥이 될 수 있다. 요새 젊은 세대의 말투로 해서 ‘비비는 데 진심인’ 민족 아닌가 말이다.
아, 비빔밥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고기 먹고 밥을 볶아 먹는 건 당대 최고의 인기 식사법이다. 한데 실은 이것이 볶음밥이 아니라 비빔밥에 더 가깝다. 요리공법상 잘 보시면, 양념에 밥과 기름을 비비는 것이지 절대 볶는 쪽이라 할 수 없다. 비비는 것은 재료의 약점을 가릴 수 있다. 빨리 먹을 수 있으며 융통성도 좋다. 비빔밥에 무슨 재료가 꼭 들어가야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간편하고 영양도 충분하다. 비빔밥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을 한 번쯤 돌아볼 시기인 듯하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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