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에 담긴 세상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중국집에도 지역성이 있다

by 광주일보 2021. 10. 24.
728x90
반응형

몇 해 전이던가, 코로나도 들기 전의 시절이다. 광주에 볼일이 있어서 송정역에 내렸는데, 지하철에 김밥 프랜차이즈 광고가 크게 붙어 있었다. 이 도시를 찾는 외지 사람들이 대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호남에 가면 음식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의 절반쯤이 늘 가득 차곤 한다. 점심과 저녁은 어디서 맛있게 먹을까, 혼자 가서도 상을 받을 수 있을까 같은 기대감에 부푼다. 더러는 비판적 생각도 한다. 호남이라고 어디서 재료를 거저 가져오진 않을 텐데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은 건 아닐까, 저렇게 해서도 남을까. 어찌 됐거나 음식에 대한 상념이 치솟는 곳이 호남이다.

내게는 특히. 그런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김밥 프랜차이즈 광고가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복잡해졌던 것이다. 하기야 김밥 같은 ‘패스트푸드’는 프랜차이즈 회사의 기획과 광고, 일관된 조리법 등이 미더운 구석도 있을 터. 어쩌면 이 맛의 도시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공존하는 일이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내 끼니를 저기서 때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다. 나는 그날 저녁, 도회를 걷다가 그 김밥집에서 한 덩이 김밥을 먹었다. 저녁에, 그것도 술도 아니고 밥만 먹자고 들어갈 만한 식당이 점차 없어지는 추세인 데다가 여기저기 요란스레 찾아다니는 성정은 아니어서 마땅한 집을 못 찾은 까닭이었다. 이 얘기를 어디 가서 상당히 억울하게 털어놓곤 하는데, 어찌 됐든 광주에서 저녁으로 프랜차이즈 김밥은 아니지 않아? 하는 미련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고, 논의해 보자면 참 할 말이 많은 일이기도 하다.

전국 어디든 제각기 다 맛을 내세우는 시대다. 다른 지역, 특히 수도권과 다른 방식의 음식문화를 가진 곳이 요새 인기가 높아졌다. 이걸 음식의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순대에 쌈장 안 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튀김에 상추도 안 주더라니까” “간짜장에 계란프라이 안 주는 건 또 어떻고?” 서울에서 흔하게 듣는 지역 출신 친구들의 얘기다. 듣다 보면 너무도 재밌다. 이 작은 땅, 두어 시간이면 안 닿는 곳이 없어서 심지어 기차에 침대칸 식당 칸도 없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생생히 숨 쉬는 지역성이 얼마나 고마운지.

중국음식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지역성과 중식당을 말해 보고 싶다. 먼저 짬뽕. 육고기가 들어가는 짬뽕은 고전적인 것인데, 서울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성행하고 있다. 본디 이런 짬뽕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군산이 짬뽕도시로 뜬 이유 중의 하나는 고기를 넣는 이른바 ‘육짬뽕’ 덕이었다고 한다. 타지인에게 특이하게 보였고 맛도 진해서였을 것이다. 짬뽕에 식초 뿌려 먹는 사람이 제일 많은 도시는 부산과 익산, 전주 쪽인 것 같다. 물론 거의 노인 한정이다. 짜장면에 고춧가루도 이젠 거의 안 뿌리는 시대니까.

예전에 광주에서 짜장면을 먹었는데, 무를 넣어 주었다. 너무도 신기해서 주방장에게 여쭈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채소가 연중 나오지 않아서 계절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채소를 넣다 보니 무도 들어갔다고 증언한다. 요즘처럼 저장성 좋은 양파를 늘 구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어서 반찬 낼 때 대파와 교대로 내고, 더러는 양배추도 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중국집에서도 김치를 내주는 동네는 단연 호남이고, 그 질도 제일 좋다고 나는 단언한다. 강진에서는 묵은지까지 주는 집도 봤다.

중국집은 빤한 메뉴 같지만, 세부적인 스타일이 지역마다 상당히 다르다. 부산의 계란프라이 같은 게 그런 예인데, 호남의 상당수 지역에서는 술을 주문하면 짜장을 안주로 내준다. 원래 술이란 실비 개념이 있어서, 한 병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오는 문화가 꽤 오래 존속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그 시절 풍습으로 중국집에서조차 짜장이라도 깔아 주는 게 아니었던지. 더러는 짬뽕 국물을 내주기도 한다. 볶음밥을 시키지 않았는데 술안주라도 하라고.

대구의 중국집은 유독 전가복을 파는 집이 많고 찐만두를 ‘찐교스’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교스는 교자(餃子)라는 뜻이다. 물론 대구에서는 야키우동이라고 호칭하는, 국물이 적은 볶음식 짬뽕도 유명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한 가지 더. 특정 지역은 아니고 대개 작은 소읍이나 면소재지의 일반적 풍습인데, 한식과 중식을 같이 파는 집이 많다는 것이다. 이 또한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지방은 또 비교적 도시에서조차 저녁에 일찍 닫거나 점심 장사만 하는 집이 많아졌다. 이제는 더 이상 중국집에서 저녁 요리를 즐길 인구도, 문화도 사라져 가고 있다는 표시일 게다.

지역성이 옅어지는 세상이다. 그래도 아직은 중국집에서조차 지방마다 다른 풍습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자기 고장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지키는 건,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 알고는 있어도, 서울식에 다 뒤섞여 버리면서 없어지는 걸 어쩌나 싶지만.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소갈비는 못 먹어도 ‘고갈비’는 먹어야지

청년기에 누가 ‘고갈비’를 사 준다고 해서 크게 기대를 하고 갔다가 실망한 적이 있다. 이삼십 년 전쯤 술자리에서 흔하게 보던 생선. 아시겠지만, 고갈비는 그냥 고등어구이를 달리 이르는

kwangju.co.kr

 

[이덕일의 역사의 창] 국립중앙박물관의 실수?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실 중국관에서 조조(曹操)의 위(魏)나라가 충청도까지 지배했다는 내용의 영상을 전시했다가 ‘실수’라고 사과했다. 배현진 의원의 지적에 대해 민병찬 관장

kwangju.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