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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고규홍의 나무생각] 나무의 생존 전략에 담긴 단풍과 낙엽의 비밀

by 광주일보 202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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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내리고 시나브로 나무에 가을빛이 뚜렷이 올라온다. 노란색에서 빨간색이나 갈색에 이르기까지 나무마다 제가끔 서로 다른 빛깔로 달라질 태세다. 단풍이다. 단풍의 ‘단’(丹)은 붉은 색을 뜻하는 글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 잎도, 갈색으로 물든 도토리나무 잎도 모두 ‘단풍 들었다’고 말한다. 원래 글자 뜻과 달리 단풍은 가을에 바뀌는 모든 빛깔을 말한다.

나무에게 단풍은 겨울 채비의 첫 순서다. 단풍이 드는 것은 나무의 모든 생애에서 가장 치열한 생존 활동이다. 에멜무지로(대충) 가을을 보낸다면 엄동의 북풍한설을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긴 휴식을 위해서 나무가 준비해야 할 일은 하고하다. 바람에 가을 기미가 느껴질 즈음부터 나무는 잎과 가지를 잇는 물의 통로 안쪽에 떨켜층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키워 낸다. 뿌리에서부터 잎까지 오르는 물의 통로인 물관을 틀어막으려는 준비다.

떨켜층이 물관을 막을 만큼 몸피를 키우게 되면 더 이상 물은 올라오지 않는다. 물을 끌어올리지 않는다는 건 양분을 짓는 노동, 즉 광합성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더불어 나무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물관에 남아 있는 물까지도 덜어 내야 한다. 물관 속의 물이 얼면 물관이 터져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이 없으니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잎의 초록 엽록소는 차츰 활력을 잃고 스러진다. 이제 초록에 가리웠던 다른 빛깔들이 드러날 차례다. 나무마다 제가끔 성분에 차이가 있어서 노랗거나 붉거나 갈색까지 천변만화를 보인다. 은행나무처럼 노란 색이 강하게 오르는 나무는 카로티노이드 성분을, 단풍나무 같이 빨간 색이 화려하게 오르는 나무는 안토시아닌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버즘나무처럼 갈색으로 물드는 나무는 탄닌 성분이 많아서 그렇다.

평안한 겨울잠에 들기 위해 마무리해야 할 일은 아직도 남아 있다. 나무는 계산에 들어간다. 단풍이 든 잎을 떨굴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의 어느 쪽 효율이 더 높은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만일 광합성을 통해 지어 내는 에너지가 잎을 유지할 때에 드는 에너지보다 많다면 굳이 잎을 떨굴 필요가 없다.

잎을 그대로 둘 경우, 잎 속의 엽록소는 낮의 길이가 줄어들어 광합성 활동은 줄어들겠지만 애면글면 광합성을 이어 갈 것이다. 그 적은 양분의 생산을 위해서 잎을 유지하는 데에도 일정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똑똑하게도 나무는 그걸 계산해 낸다. 계산에 포함되는 변수는 더 있다. 기온이다. 추워지면 흙의 수분도 얼어서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기 어려워진다. 햇살도 물도 활용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결국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높아진다는 계산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아직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나무 위에 소복이 쌓일 눈도 나무가 대비해야 할 변수다. 눈은 나뭇잎 위에 쌓인 채 얼어붙어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나뭇가지 위에 쌓인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구부러지고 심지어 줄기까지 부러뜨려 급기야 나무를 죽게 할 수도 있다. 치명적 사태다.

이제야 비로소 결단을 내릴 계산이 끝났다.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나는 게 유리하다. 봄부터 나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노동에 지친 나뭇잎들을 내려놓기로 나무는 결심한다. 광합성이라는 노동을 통해 하릴없이 노화한 잎을 내려놓는다. 낙엽이다. 수굿이 지내 온 나무의 한해살이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눈보라 몰아치는 벌판에서 홀로 찬바람 이겨 내야 하는 건 나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고요해 보이지만 치열할 수밖에 없는 잠자리다. 뿌리 곁에 소복이 쌓인 낙엽은 서서히 썩어간 뒤에 다음 생명의 자양분으로 돌아가 새 봄을 기다린다.

단풍에서 낙엽까지 나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에는 살아남기 위한 생명의 간절함이 들어 있다. 이 가을, 울긋불긋 물든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생명의 노래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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