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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소갈비는 못 먹어도 ‘고갈비’는 먹어야지

by 광주일보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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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에 누가 ‘고갈비’를 사 준다고 해서 크게 기대를 하고 갔다가 실망한 적이 있다. 이삼십 년 전쯤 술자리에서 흔하게 보던 생선. 아시겠지만, 고갈비는 그냥 고등어구이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도시의 포장마차나 민속주점, 학사주점 같은 허름한 술집에서는 흔하게 고갈비를 팔았다. 평범한 고등어구이를 내고 안주값을 받자니 머쓱했던지, 주인은 꼭 빨간 소스를 뿌려 냈다. 그래서 서울에선 고갈비 하면 양념을 끼얹은 고등어 정도를 의미했다.

고등어는 오랫동안 제일 흔한 생선이었다. 고등어가 귀하고 맛이 좋아서 고등(高等)어라는 얘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 ‘자산어보’에는 푸른빛이 있다 하여 벽문어(碧紋魚)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 고도어(古刀魚)라는 호칭이 나온다. 아마 이게 고등어로 발음이 변했을 것이다. 개체수가 많고 먹성이 좋으며 번식률이 뛰어난 고등어는 오랫동안 흔하고 만만한 생선이었다. 가을부터 맛이 드는데, 어머니가 고등어 반찬을 마다할 리 없었다. 너무도 싼 생선이었으니까.

‘감자와 양파 넣고 조리거나, 소금을 뿌려서 연탄화덕(과거 도시는 아파트가 아닌 작은 슬라브 단독주택이 많아서 작은 마당이 딸려 있었다)에 구웠다. 심지어 도시락 반찬으로도 자반고등어를 넣어 주시기도 했다. 하! 그 비린내라니. 그래도 찬밥 도시락에 식은 자반고등어도 꽤 맛있었다. 심지어 물 만 밥을 식은 자반고등어에 먹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 보면 고등어 기름이 밥을 만 물 위에 둥등 뜨게 마련인데, 그 물을 숭늉 삼아 다 들이켜는 게 보통이었다.

고등어가 귀해진 지 꽤 오래다. 서울 충무로나 종로 같은 오피스거리에는 생선구이집이 아주 많았는데, 그중 고등어가 가장 흔했다. 이제는 주로 노르웨이 고등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등어가 고급 생선이 된 건 틀림없다. 맛은 정말 좋은데, 그동안 흔해서 대우를 못 받았다고 해야 옳겠다. 자반고등어(간고등어)의 원조라고 하는 안동·영주 일대를 가면 한 손(두 마리)에 큰 놈은 2만 원이 보통이다. 그걸 팔면서 상인이 말한다. “비싸 보여도 남는 게 없어요. 워낙 큰 고등어가 귀해서.”

백화점에서 파는 고등어 중에 40센티미터 넘는 큰 놈은 한 마리에 2만 원, 3만 원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도 보았다. 횟감 광어보다 더 비싸다. 사람들은 혀를 찬다. 하지만 바닷속 궁리를 우리가 다 어떻게 알겠는가. 누구는 남획 때문이라고 하고, 누구는 수온 변화를 어획량 감소 이유로 든다. 아마도 두 가지가 다 해당될 것이다. 많이 먹고, 만만하게 먹는 ‘자연산’은 언젠가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서 시장에 충격을 준다. 청어와 정어리가 그랬고, 명태가 그랬다.

고등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바닷가에서 잡힌다. 먹이인 멸치나 새우 떼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서 고등어도 같이 움직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어를 흔히 남해에서만 잡는 줄 아는데 아니다. 고등어는 서해안의 남쪽부터 동해안까지 두루 출몰한다. 방파제에서 낚시를 드리우면 더러 무리를 잃어버린 어린 고등어가 잡힌다. 어린 놈도 바로 회를 치면 아주 맛있다. 특히 가을이 되어 기름이 오르기 시작하면 꼭 큰 고등어가 아니더라도 낚시로 잡은 놈은 횟감으로 그만이다.

요즘 젊은 층들은 일본식 선술집에서 고등어를 즐기기도 한다. 초와 소금에 절여서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 방식이다. 고등어로 파스타를 하는 이태리식당도 많다. 된장을 발라서 굽기도 한다. 고등어회가 인기를 끌면서 경남 통영 아래 욕지도 등에서는 양식을 한다. 가격은 상당히 비싸서 최고급 횟감에 들어간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어머니가 구워 주시던 늦가을날의 고등어구이가 생각난다. 기름이 뚝뚝 떨어져서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며 연탄불 석쇠에 익던 고등어. 새벽에 수산시장 장을 보다가 고등어가 물이 좋으면 꼭 몇 마리 산다. 직원들과 요리해 먹기 좋다. 식당 주방의 그릴에 왕소금 훌훌 뿌려서 구워도 좋고, 갓 나온 햇무를 넣어서 매콤하게 조려 먹어도 맛있다.

옛날에는 고등어 내장으로 젓을 담그기도 했다는데,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고등어 내장은 쉬이 물러져서 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산지에서 바로 배를 따서 만들었겠지. 과거 젓갈의 이력을 보면 온갖 생선과 부위가 다 쓰였는데, 요즘 젓갈은 그에 비하면 아주 단출한 편이다. 수고할 사람도, ‘손내림’의 비법도 점차 사라져 가기 때문일 것이다.

아, 하늘이 높고 서늘한 바람이 부니 고등어 맛이 먼저 생각나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요리사인 모양이다. 올해 제철 고등어는 많이 잡힐지, 값은 어떨지 궁금하다. 옛 추억에 자주 등장하는 첫 번째 생선인 고등어. 스무 살 무렵 소주에 고갈비를 나눠 먹던 엣 친구들의 귀밑머리가 이젠 허옇게 세었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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