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맥주→치킨집 변경에도
코로나 여파 나아지지 않는 삶
한쪽엔 국화꽃 한송이 덩그러니
13일 오후 찾아간 여수시 선원동 여천전남병원 장례식장 A(47)씨의 빈소에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영정 속 A씨는 자신감 넘쳐보이는 젊은 가장이었다.
빈소에서 만난 친형 B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이 유서에 적혀 있지만 생활고가 원인은 아니다”면서 “최근 건강도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13일 여수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2일 오전 11시 40분께 자신이 소중하게 운영해온 여수시 학동의 치킨집에서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A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쪽지가 발견됐다.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 내용,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지인들이 기억하는 A씨는 ‘인사성 밝은 활동적 성격의 사람’이었다.
A씨 가게 주변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인상 좋고 인사도 먼저 건네는 친절한 사람”이라며 “11일까지도 문을 열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지인은 “활동적이라 평소에 자전거와 배드민턴을 좋아했다”면서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고 했다.
다만, 지인들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상황을 버텨내느라 힘들어했고 지난 주부터 얼굴빛이 좋지 않아 보였다고 기억했다.
그가 운영하던 치킨집에는 경영난으로 힘들어했을 그의 고민이 엿보였다.
기자가 찾아간 A씨 가게는 한쪽 문이 열려있었다. 사고 당일까지 있었다는 소방당국의 ‘출입통제’ 테이프는 치워진 상태였고 입구에는 수십만원 상당의 상·하수도 사용료 청구서가 놓여있었다. 지난 4개월 간 청구 요금이었다.
A씨 가게 입구에 놓인 출입명부 속 방문자 기록일지는 지난 9월 6일 이후로 비어있었다. 소방당국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서 강제로 개방한 듯한 다른 쪽 출입구에는 누군가 두고간 국화꽃 한송이가 놓여있었다.
A씨는 지난 2019년 4월 여수시 학동에 치킨집을 열면서 왕성하게 일을 했다고 한다. 배달 뿐 아니라 음식점 내부에 테이블 10여개를 갖춘 규모라 장사도 잘됐다는 게 주변 상인들 전언이다. 하지만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손이 가는 일거리가 많은 탓에 A씨는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하다 1년 만인 지난해 4월 맥줏집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가 들이닥쳤고 한여름 말고는 손님도 많지 않았다. 결국 경험이 있던 치킨집으로 6개월만에 다시 바꿨다고 한다.코로나가 장기화됐고 영업시간 제한 등이 이어지면서 경제적 타격을 쉽사리 회복하기도 힘들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동종 업종 간 경쟁도 심했다.
A씨 가게가 있는 동네 주변 300m 가량의 먹자골목에만 치킨집 11개가 있었다.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 운영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밤 10시면 문을 닫아야해 A씨 가게 뿐 아니라 일대 모든 치킨집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여수는 인구 대비 치킨집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지난 2019년 기준으로 인구 275명 당 치킨집 1곳이었다. 총 업체수로도 1023개 치킨집이 영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전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도시다.
전국 자영업자들은 A씨의 소식을 듣고 SNS에 애통함과 애도의 글을 올리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리면서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 자영업자들 단체대화방에 글을 올린 한 자영업자는 “이번엔 치킨집 사장님이네요.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라고 썼고 다른 자영업자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베르테르 효과는 일어나지 않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여수=글·사진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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