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부모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한국 아빠·프랑스 엄마의 남다른 육아방식 담은 책
아이 행복만큼 부모 행복도 중요 “조바심 내지 마세요”
“나를 낳아 길러준 것은 내 부모이지만, 나를 어른으로 만드는 건 내 아이들이다.”
선언적 정의와도 같은 이 말은 어른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 자칭 ‘시즌제 인생’을 살고 있는 정상필 작가. 그의 말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프랑수아즈 돌포의 “엄마를 만드는 것은 아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현재 정 작가는 프랑스인 와이프와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 중부 불루아라는 도시에 거주한다. 원래 그는 구례 출신으로, 한때는 광주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프랑스 초등학교 교사인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으며 현재 4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정 작가가 말하는 ‘시즌제 인생’은 시즌마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20~2021시즌에 난생 처음 전업주부로 지냈고, 그 이전 시즌엔 우버 기사, 번역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방송국 코디네이터, 일간지 기자로 바쁘게 살았다.
그가 이번에 “아이와 함께 크는 한국아빠의 프랑스식 육아”를 담은 ‘메르씨 빠빠!’(오엘북스)를 펴냈다. 최근 한국에 나올 일이 있어 잠시 광주에 들렀던 저자를 만나 프랑스에서의 생활, 그곳의 육아 방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자는 결혼 10주년이 지나자 자신을 둘러싼 변화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아는 출판사에서 다문화 가정의 육아와 가족 일상을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이 낳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주로 기르는 것이고, 아이가 생기기만 하면 엄마라는 한 여자의 삶은 없어진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죠. 한마디로 한국적 육아의 현실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만약 한국에서 네 명의 아이를 키운다면 ‘진정한 애국자’라는 말을 들었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한국 평균 출생률이 0.84명으로 1970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OECD 국가에서 유일하게 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작가는 “아이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걸 우리의 사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지만 조그만 인식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면 그걸로 내 이야기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말대로 ‘전라도 촌놈’과 프랑스 뽕도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아내는 문화적으로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다는 것은 자녀에 대한 욕심을 뛰어넘는 남다른 육아방식이 있을 법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육아에는 어떤 점이 다른가”라는 물음에 그는 “프랑스 부모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 같다”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28개월 된 막내아이가 기저귀를 뗀 일화를 들려줬다.
“어린이집에서는 자꾸 ‘아이가 원해서 뗀 게 맞나요?’라고 물어요. 혹여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 저희들이 억지로 변기에 데려가 앉힌 게 아닌지 걱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이른 편이어서 그런 걱정을 하는 듯 했어요.”
프랑스에서는 유아뿐 아니라 조금 큰아이들 부분에 있어서도 한국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곳에는 선행학습 같은 개념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오는 학생 중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학생이 아는 학생보다 더 많은데 이는 “아이들 성장과정에서 나이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선 영화를 보더라도 시청 가능한 나이에 맞춰 보여준다. 단적으로 12세 미만 영화를 11세에게 보여주는 일은 거의 없다.
다른 무엇보다 그는 육아에는 답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육아 방식은 “프랑스 가족의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며 “프랑스 가족의 문화를 배우면서 육아를 동시에 배운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을 좋은 아빠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점이다.
밖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그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통해 종종 한국의 소식을 접한다.
“너무 치열하게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모든 게 과잉돼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도 그런 분위기가 육아에도 드러나지 않나 싶구요. 결과적으로 이 같은 양상이 결합돼 젊은 부부들이 아이 낳는 걸 망설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가족 이야기를 모티브로 두권의 책을 냈다. 이전의 책 ‘세상이 멈추자 일기장을 열었다’나 이번의 책은 모두 가족을 테마로 했다. 앞으로도 가족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이들을 왜 저렇게 키우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 지구 반대편에서 당신(독자)과 같은 고민으로 일상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이 있으니 외로워 마세요. 우린 그저 어른이 되고 있는 과정이며, 중요한 건 당신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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