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발레 ‘애기섬’ 감동
백시종 소설 ‘여수의 눈물’
웹드라마 ‘동백’ 국제적 관심
‘여순 10·19 증언론’ 눈길
현대사의 비극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여순사건.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던 여순사건은 지난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출동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토벌 작전을 전개했으며 이로 인해 무고한 여수, 순천 지역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지난 6월 29일 소병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맺힌 73년의 한을 풀게 됐다. ‘여순사건특별법’은 지난 16대 국회부터 20년 동안 총 8번의 발의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동안 여순사건은 소설, 드라마, 창작발레, 다큐, 증언록, 사진집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조명됐다. 현대사의 비극과 참상을 그린 작품들은 ‘아픈 손가락’이자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했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지난 10일 여순사건의 아픔을 모티브로 한 창작발레 ‘애기섬’이 광주에서 큰 감동과 여운을 남기며 공연을 마친 것을 계기로 당시를 배경으로 창작된 다양한 작품과 증언록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나라발레씨어터의 창작발레 ‘애기섬’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엇갈린 주인공들의 극한의 대립과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공간적 관점에서 ‘애기섬’은 지난 1950년 국가 권력이 여수의 국민보도연맹 가입자인 민간인 100여 명을 집안 수장시킨 슬픈 역사를 품은 장소다. 이번에 공연된 발레 ‘애기섬’은 지난 1991년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휘말리면서 스크린에 상영되지 못했던 장현필 감독의 영화 ‘애기섬’을 모티브로 했다.
여순사건은 장편소설로도 그려졌다. 여수 출신 백시종 작가는 ‘여수의 눈물’(2020)이라는 소설을 통해 “더 늦기 전에 그날의 참상과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작가적 사명감에서 글을 썼다. 광주일보 전신 옛 전남일보 신춘문예(66년)에 ‘자라지 않는 나무’로 문단에 나왔던 작가에게 여순사건은 말 그대로 필생의 과업이었다.
작가가 5살 때 보았던 끔찍한 현장은 이후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혔다. 그는 “비로소 미루고 미뤄뒀던 과제를 마쳤다”는 말로 감회를 표현했다. 어린 시절 여천 군청 청사 뒤쪽, 오동도가 선명하게 보이는 곳에 살았던 작가는 “그날 새벽 콩 볶는 총소리를 들었고 포승줄에 묶인 채 총살 당하는 제복 입은 남자들의 죽음을 보았다”고 밝혔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현장 취재를 꼼꼼히 했고 자신과 연배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운동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반란군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였는데 아비규환 자체였다”는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여수시가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아 제작했던 웹드라마 ‘동백’도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특히 ‘2019 서울웹페스트 특별상’ 수상을 비롯해 ‘2019 스페인 빌바오 웹페스트 황금늑대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여수관광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서 나아가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해외 웹영화인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냈다.
당시의 진실과 국가 폭력의 실상을 오롯이 담은 증언집도 의미 있는 기록물이다. 순천대 여순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여순 10·19 증언론-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 그리운 아버지’는 140여 명의 구술자의 채록 가운데 14명의 증언을 수록했다.
순천시 향동에 거주하는 김연수 씨는 여순사건 당시 부친을 잃었다. 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부친은 쫓기는 신세였다. 김 씨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소작쟁의를 벌였고 18세부터는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사회주의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때 아버지를 잡으려 한 거지요. 당시 아버지는 면서기를 하고 있었는데 잡히면 죽으니까 피해 다녔어요. 결국 집에서 잡히고 말았어요. 잡혔던 그날, 죽여버렸어요. 서면 구랑실에서 죽여버렸어. 총살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군인들이야. 그날, 연락을 받고 집안 어른들하고… 나 7살 때 시신을 수습했지요.”
여순사건 70년을 맞아 KBS 순천방송국이 기획했던 다큐멘터리 ‘낙인’도 당시 자행됐던 무법적인 민간인 학살의 실상을 밝힌 작품이다. 프로그램은 여순사건이 단순한 군 내부의 항명이 아닌 미군정기와 이승만 정부에서 누적된 모순이 대중 저항운동으로 폭발했다는 점을 입체적으로 증명한다. 제작진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유족들의 삶을 조명하고 내면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집도 발간돼 이목을 끌었다. 지난 2019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펴낸 ‘1948, 칼 마이던스가 본 여순사건’이 그것. 참혹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집에는 민간인 피해, 시민들의 피난, 협력자 색출과 학살 등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수록돼 있다. 사진은 당시 타임·라이프지 도쿄지국장이었던 칼 마이던스가 현장에서 찍은 것으로 사진집에는 모두 98장이 담겼다. 마이던스의 사진은 신문기사와 공문서가 제공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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