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장편 ‘날씨와 사랑’ 펴내
여름 배경 사랑 이야기 그려
이효석문학상 등 수상
“우리가 자주 지치는 건 인생은 기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많은 걸 기다렸다. 오랫동안 솔직한 답장과 용기 있는 고백을 기다렸고, 어제보다 약간은 기름진 여유를 기다렸고, 절망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렸고, 밤잠을 설쳐가며 이야기의 첫 문장을 기다렸다. 기다림의 대가는 섭섭했지만 무엇도 남은 게 없는 것보다 여전히 기다림의 목록을 지녔음에 감사하며 하늘을 본다. 비록 지치더라도 기다림은 희망이기도 하니까.”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문학동네 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광주 출신 장은진 작가(47·사진). 장 작가가 이번에 다섯 번째 장편 ‘날씨와 사랑’을 펴냈다.
책을 펼쳐보다 말고 다른 무엇보다 ‘작가의 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기다림에 대해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기다림의 목록을 지녔음에 감사한다.
누구에게나 기다림은 있다. 오늘을 견디는 힘은 그 기다림 때문인지 모른다. 비록 지치고 힘들더라도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일 테니까.
처음 장 작가를 알았던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당시 그는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키친 실험실’이 당선돼 유명인사가 됐다. 강렬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 간단치 않는 소재를 예리한 시각으로 그린 소설은 당시 문청들 사이에 회자가 됐었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다. 그 사이 작가는 모두 5권의 장편과 3권의 창작집을 펴냈다. 2년에 한번 꼴로 작품집을 발간한 셈이다. 간혹 작품집 발간 소식과 함께 문학동네작가상, 이효석문학상과 같은 유수의 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어느 날은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가, 글이 뜻대로 써지지 않을 때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만난 못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운데도 미워할 수 없고, 손에서 놓고 싶은데도 놓을 수 없는, 애증관계인 것 같습니다.”
출간 소식을 듣고 건넨 통화에서 작가는 소설을 그렇게 묘사했다. ‘유일한 버팀목’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전의 어떤 작가는 문학에 대해 ‘목을 매달아도 좋을 나무’라고 고백했었다. 그 작가의 고백도 강렬했지만, 장 작가의 ‘유일한 버팀목’이라는 말도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작가가 이전에 펴낸 ‘날짜 없음’이라는 장편은 겨울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였다. 그에 반면 이번 장편은 “여름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다. “여름이 가기 전에 보편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서사를 다뤄보고” 싶었다는 것이 이번 작품을 발간하게 된 이유다.
“2019년 초 두 달에 걸쳐 초고를 완성했으니 발간하기까지 2년 반이 걸린 셈이네요. ‘책 한 권을 쓰고 내는 일이 참 어렵구나’ 라는 걸 요즘 들어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소설은 아득하고 막막한 장면에서 펼쳐진다. 가출한 어머니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해주는 장갑 공장 일에 청춘을 보낸다. 어느 날 그녀에게 우산을 쓴 남자가 다가온다. 맑은 날씨에도 우산을 쓴 남자는 해주에게 새로운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태양이 작열하는 광장에 나와 우산을 쓴 채 서 있는 남자를 사람들은 ‘우산씨’라고 부른다. 해주는 그에게 다가가 그가 세상에 내보이는 우산 하나만큼의 거리를 좁혀보려 한다. 두 사람은 점차 호감을 갖게 된다. 의지할 곳 없이 모든 것을 혼자 견뎌온 해주에게 그는 남다른 존재가 된다.
장 작가는 “꿈을 갖지 못했거나 포기해야 했던 젊은 청춘들이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사막처럼 덥고 먼지가 날리는 녹록지 않은 나날이지만 그래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오늘의 소설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추세다. 시대 흐름이 빠른 것처럼 작품 양상이 변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그 또한 어느 때는 “트렌드에 따르는 글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나 트렌드를 쫓아 글을 쓰더라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발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저 제가 쓰고 싶은 글을 묵묵히 써 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지역에서 창작활동을 하며 중앙의 출판계나 문단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문학 또한 블랙홀처럼 서울로 집중된다.
“작가들과 교류 시간을 갖기도 어렵고 인터뷰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어느 땐 잡혔던 인터뷰가 취소되는 경우도 빈번했어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구요. 좋은 점이라면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히 소설 쓰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가라면 ‘골방’에서 작품을 꾸준히 써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현재 작가는 따로 직장생활을 하거나 창작 이외의 활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소설쓰기에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향후 계획도 비교적 간단하다. 발표한 단편을 모아 소설집을 낼 계획이다.
“작가에게 계획이란 늘 두가지인 것 같아요.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한편으론 무조건 쓰는 거지요.”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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