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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사소한 것들의 현대사 - 김태권 외 지음

by 광주일보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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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피시통신, 개인정보, 삼성휴대폰, 기아차, 베스트셀러, 잡스와 애플, 봉준호 VS 박찬욱….

‘오늘의 우리를 만든 작고도 거대한 36가지 장면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사소한 것들의 현대사’를 보면 지나온 시절의 풍경이 그려진다. 

사실 우리의 현대사는 그렇게 밝지 않다. 분단과 전쟁, 독재와 국가폭력, 학살 등으로 점철돼 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 또한 달라지지만 우리의 역사는 대개 크고 무거운 이미지로 침윤돼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사소한 것’이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면 쉽고 재미있게 현대사를 접근할 수 있다. 사소한 것의 키워드에는 ‘탈모’도 있고 ‘생리대 광고’ 등도 들어 있다.

책은 지난 1988년부터 축적된 ‘한겨레’ 아카이브를 활용해 각계 전문가 19명이 저자로 참여했다. 김태권 만화가를 비롯해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김재섭 ‘한겨레’ 선임기자, 이은희 과학 저술가 등이다.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해 지난해 5월붙 올해 3월까지 ‘한겨레’에 연재된 ‘시간의 극장’ 프로젝트를 수정, 보완했다.

책은 한마디로 36가지 키워드에 관해 쓴 현대사 콘텐츠다. 무엇보다 소수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역사이기도 하다. 그 예로 생리대 광고, 화장품 광고 변화를 통해 여성 인권 변화를 주목한다. 

키워드들은 모두 4개의 카테고리, 즉 문화와 정치, 경제, 사회로 세분화돼 있다.

‘치킨’은 문화 부문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다. “통닭은 충격이었고, 치킨은 힙했다라”는 문구는 강렬하게 지난 시절을 소환한다. 낯익은 70년대 풍경 가운데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누런 봉투를 들고 귀가하는 모습이 있다. 봉투에는 치킨이 들어 있었다. “요리칼럼니스트 김학민씨는 ‘요리 과정이 복잡한 백숙이나 삼계탕 같은 요리가 다였던 시절 간편한 조리법의 통닭이 등장한 건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한다.” 지난 2012년 한겨레 ‘esc’에 실린 전기구이 통닭기사다.

또한 전설의 투수 김태원이 차린 치킨집이 망한 일화를 통해 시장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보여준다. 김태권 만화가는 소수의 업체가 입맛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맛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피시통신’에서는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 등이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피시통신 배경 작품으로 히트를 한 영화 ‘접속’, 피시통신에 연재된 글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초창기 사이버페이스 문화를 보여준다.

정치 부문에는 ‘그들이 꿈꾼 세상의 이름’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여기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노회찬 등의 정치인들이 나온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을 국제 정치인 측면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 빌리 브란트, 지미 카터, 프랑수아 미테랑 등 온 세계가 ‘김대중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선 사실 등이 소개되며, 김대중은 “서구가 아닌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는 신념을 견지한 인물로 평가된다.

경제 부문은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의 가려진 목소리에 주목한다. 눈부신 성장 이면에 가려진 실상은 오늘의 경제 상황과 연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과거 ‘잊을 만하면 물난리 나던 동네’였던 강남의 아파트는 교육열, 자산가치 기대감으로 폭등했다. 정부가 구축한 인프라가 다른 지역의 기회를 박탈한 것에 다름아니라는 관점이 눈에 띈다.

‘에스엠과 이수만’은 한류 중심에 있는 케이팝이 편견에 맞선 결실이라는 시각을 담고 있다. 스타 시스템이 획일화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 시스템이 케이팝을 완성했다는 시각까지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사회 부문에서는 성희롱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던 신 교수 사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됐던 고대 이대축제 난입 등을 다루고 있다.

  <한겨레출판·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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