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향기 그윽한 사찰…일상 속 휴식처
무각사 입구 불이문 남쪽은 문화공간, 북쪽은 신행공간
황영성 ‘반야심경’, 스테인드글라스 불화 ‘수월관음도’ 눈길
광주 상무지구에 자리한 무각사(주지 청학스님)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불이문’(不二門)이 방문객을 반긴다. 5000여 평에 달하는 무각사는 불이문을 경계로 공간이 구분된다. 남쪽은 로터스 갤러리와 카페, 서점, 템플스테이 등이 자리한 시민문화공간이, 북쪽은 대웅보전과 설법전, 수행실 등이 배치된 신행공간이다. 시민문화공간이 신자와 지역민들의 쉼터라고 한다면 신행공간은 스님들과 신자들이 기도를 올리는 불당이다.
‘무각사 문화관’으로 불리는 시민문화공간은 갤러리, 카페, 서점이 들어서 있다. 불교서적과 명상 관련 도서가 비치된 서점과 카페를 지나 밖으로 나가면 대나무 숲이 우거진 야외테라스가 나온다. 이 곳에 앉아 대나무 숲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뭐니뭐니해도 무각사 문화관의 메인 공간은 바로 로터스 갤러리다. 우리말로 연꽃을 뜻하는 로터스(lotus)는 진흙밭에서 자라는 꽃이지만 때를 타지 않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로터스 갤러리는 3년 전까지만 해도 1층의 작은 전시장(20평 규모)이었다. 하지만 청학스님이 3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 1층(100평)을 확장하면서 여느 대형 미술관 부럽지 않은 근사한 갤러리로 변신했다.
전시장을 찾던 날에는 서양화가 황영성의 ‘소와 가족 이야기’(4월23~7월20일)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올해 ‘소의 해’를 맞아 기획된 전시는 200호 대작 부터 4호 크기의 소품까지 80여 점이 출품됐다. 화사한 색감과 가족들의 오붓한 모습이 담긴 작품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다가오더라도 ‘가족이 희망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하 1층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스펙터클한 전시연출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층 전시장이 일반적인 화이트큐브라면 지하 1층은 내부에 설치된 가벽과 높은 층고가 인상적인 공간이다. 대형 전시장의 ‘스케일’에 맞춰 200호 4점이 한꺼번에 걸린 ‘소와 사람들’ 연작은 단연 돋보인다. 강렬한 검은소와 흰색, 주황색, 노란색, 하늘색 등 다양한 바탕색으로 변주된 작품들은 저마다 독특한 스토리를 선사한다.
사실, 황 화백은 무각사 갤러리와 인연이 꽤 깊다. 지난 2010년 무각사 갤러리 개관 기념전으로 열린 재불화가 방혜자 초대전에서 청학 스님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프랑스 파리 길상사의 주지로 방 화백과 교류했던 청학 스님은 지역의 대표작가인 황 화백의 ‘가족’ 시리즈 작품에 감명을 받은 후 이듬해 두번째 갤러리 기획전으로 ‘황영성 가족전’을 열었다.
지난 2017년 무각사 설법전에 설치된 황 화백의 ‘반야심경’탱화는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청학 스님은 무각사 반지하 700평 공간에 설법전을 증축하면서 황 화백에게 ‘반야심경’을 탱화로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청학스님은 “외국의 성당을 둘러 볼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신자 보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종교시설의 미래가 떠올랐다”면서 “소수의 신도들이 찾는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대중화 작업이 필요해 반야심경을 현대적으로 형상화 한 탱화를 주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황 화백은 일년 여 동안 공부하며 작업에 열중한 끝에 가로 8m, 세로 2.5m의 대형 아크릴화를 완성했다. 멀리서 보면 캐릭터를 그려 넣은 것 같은 이 작품에는 반야심경 270자와 불교관련 그림들이 채워져 있다. 지난 2019년 황 화백이 봉안한 ‘천수천안도’, 대웅전 지하의 지장전에 설치된 임종로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함께 무각사를 대표하는 ‘컬렉션’이 됐다.
특히 서양의 대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재료로 제작한 불화 ‘수월관음도’는 단연 화제였다. 스테인드글라스와 불화는 누가 봐도 이질적인 조합이기 때문이다. ‘수월관음도’가 무각사에 ‘입성’하게 된 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키워드로 한 무각사의 중창불사 덕분이다.
청학스님은 2014년에 낡고 비좁던 전각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중창불사를 하면서 1층 대웅전은 전통식으로, 그 아래 반지하에 있는 지장전은 현대식으로 꾸몄다. 지장전의 ‘수월관음도’를 비롯해 ‘지장보살도’ ‘아미타팔대보살도’ ‘지장시왕도’ 등 4점과 지장보살님의 머리 위 연꽃 문양의 천개(天蓋) 등 모두 5점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다.
이같은 무각사의 파격적인 변신에는 청학스님이 있다. 1972년 송광사 방장 구산 스님의 발원으로 상무대 군법당으로 시작한 무각사는 1994년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광주의 신흥 주거지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무각사는 이런 시대의 변화와는 거리가 먼, 퇴락한 사찰이었다. 1976년 송광사 향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청학 스님은 파리 길상사를 열었고, 서울 성북동 길상사 초대 주지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초대 단장을 지냈다. 이때 문화계 인사들과 쌓은 인연들이 무각사로 이어졌다. 2007년 8월 부임한 청학 스님은 무각사에 유폐를 자청하며 항상 절을 지키자 신자와 시민들이 무각사를 찾기 시작했다.
올해로 개관 11주년을 맞는 무각사 갤러리는 지역의 미술현장과 궤를 같이했다. 지난 2012년 ‘라운드 테이블’을 주제로 개막한 제9회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프로젝트 무대로 공간을 내주었는 가 하면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2010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2018년),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블랙 미디어아트전’(2015년), 고 오승윤 화백 ‘꽃과 풍수전’(2017년), 석불 조각가 오채현 ‘돌에 새긴 희망의 염화미소’전(2020년) 등 굵직한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특히 지난 2011년 부터 매년 청년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신진작가 공모전’은 인재등용문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청학 스님은 “무각사에 오면 누구나 책과 그림,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갤러리 옆에 위치한 불교회관에 예술관련 전문 도서관을 여는 게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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