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진현기자

사람이 브랜드다 도시를 빛낸 예술가 공간 <2> 경기도 의정부 백영수 미술관

by 광주일보 2021. 6. 7.
728x90
반응형

신 사실파 거장 ‘하우스 뮤지엄’, 브랜드가 되다
이중섭·김환기·유영국·장욱진 등과 교류…조선대 미대 창설 주역
오랜 프랑스 생활 마치고 귀국…2018년 순수예술 담은 미술관 개관
전시장·경당·아뜰리에 갖춘 도심 속 ‘문화쉼터’로 자리매김
의정부시, 다양한 지원 통해 지역 랜드마크로 가꿔

 

‘장에 가는길’(116x89cm, 2010년)

미술관에 들어서자 아담한 정원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입구를 지나 건물 안쪽으로 다가가자 깔끔하게 단장된 나무와 마가렛, 매발톱, 장미꽃이 얼굴을 내민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 탓일까. 유럽풍의 순백색  2층 건물이 선명한 자태를 드러낸다. 마치 아름다운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인 신사실파 거장 백영수(1922~2018) 화백의 예술혼이 숨쉬고 있는 공간이다. 

지난 2018년 4월 개관한 백영수 미술관(관장 김명애·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은  의정부시 최초의 미술관으로 고인이 마지막까지 작품활동을 하며 창작에 몰두했던 뜻깊은 곳이다. 하지만 미술관은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여타 미술관 달리 전체 면적이 371㎡ 규모(지상2층)일 정도로 소박하다.

마침, 취재차 방문했던 날은 ‘백영수 드로잉전’(2부)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 외관과 마찬가지로 거실에 들어온 듯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전시장은 백 화백의 특유의 여백미가 느껴지는 대표작과 미공개 드로잉 작품들로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아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고개를 90도 각도로 갸우뚱하고 있는 아이와 엄마의 얼굴, 그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는 듯한 새와 병아리, 하늘을 날아 다니는 엄마와 아이….파스텔톤의 차분한 색감과 절제된 표현이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다. 그러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다. 바로 스테디셀러인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의 모자상이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날으는 모자’(50x60cm, 1969년)

 

1층 전시장에는 50여 년간 천착해 온 가족, ‘모자상’, ‘날으는 모자’(母子)을 주제로 한 유화 작품들과 드로잉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 드로잉 작품들은 손바닥 만큼 작다. 백 화백의 부인인 김명애 관장은 “백 화백은 평소 드로잉으로 먼저 그림을 그린 후 색을 입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작품도 작품이지만 드로잉에 남다른 애정을 가질 만큼 세심한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백 화백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데 바로 아뜰리에다. 미술관에서 나와 정원쪽에 위치한 이 곳은 프랑스에서 체류하던 시절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으로 작가의 인간적인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문을 열고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백 화백이 기도를 드리던 경당과 캔버스, 화구, 테이블, 생활소품 등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화실을 만날 수 있다.

생전 이중섭의 ‘절친’으로 알려진 백 화백은 1947년 이중섭·김환기·유영국·장욱진과 함께 신사실파를 창립했다. 서정적인 작품세계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100여 회의 전시회에 참여한 그는 지난 2011년 35년 간의 오랜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92세로 타계할 때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수원 출신인 그는 평생 거처를 옮겨다니는 녹록치 않은 삶을 보냈다. 2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외삼촌이 사는 일본 오사카로 어머니와 함께 건너간 백 화백은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오사카미술학교에 입학해 그림공부를 했다. 

하지만 1945년 미군의 폭격으로 살던 집이 사라지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일본인 여교사의 주선으로 목포고등여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중 당시 조선대 박철웅 총장의 권유로 광주로 거처를 옮겨 천경자, 윤재우 등과 함께 조선대 미술대학을 창설했다. 이런 인연으로 지난 2015년 광주시립미술관은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 별다른 외부활동이 없었던 그를 초청해 ‘광주시립미술관 아카이브 프로젝트 1:호남을 듣다’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고 백영수 화백이 거주한 집터에 건립된 미술관은 경기도 의정부시의 대표적인 문화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제공=백영수미술관>

 

유목민의 삶을 살았던 그가 이 곳에 정착하게 된 건 ‘오래된 집’ 때문이다. 1973년 평소 등산을 좋아했던 백 화백은 도봉산 등산길에서 내려다 본 호원동 안말 언덕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친구들과 이 일대의 땅을 구입해 작업실 겸 거처(현 백영수미술관)를 마련했다. 작품활동을 위해 프랑스로 이민을 떠난 후에도 집을 팔지 않은 그는 한국에 전시회가 있을 때면 이 곳에 들러 시간을 보낼 만큼 각별한 애정을 지녔다. 그에게 호원동 집은 마음의 고향이었던 셈이다.

지난 2011년 프랑스에서 영구 귀국한 그는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 낡고 허름해지자 2015년 기존의 집을 허물로 새로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유럽에 머무를 당시 눈여겨 봤던 하우스 뮤지엄이었다. 그의 캔버스에 자주 등장하는 집의 형태를 모티브로 삼은 곳으로 작품 11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1종 사립미술관이다.  

고 백영수 화백.

2017년 11월 현재의 미술관 건물이 완공되자 백 화백은 이곳에서 거주하며 생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마침내 이듬해인 2018년 4월 20일‘백영수 미술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개관했지만 두 달 뒤 화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재)백영수 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한 김 관장은 개관전 ‘백영수 하늘을 날다’(2018년)를 시작으로 개관 1주년 기념전‘제1전시:화가 백영수의 일생’, ‘제2전시:백영수, 화가의 집’, 의정부미술도서관 개관전 ‘늘 곁에, 백영수 화백 그리고 그림책’, 개관 2주년 기념전 ‘또 한번의 봄’, ‘백영수 드로잉전’ 등을 개최하며 작지만 강한 미술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역의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미술관 에티켓’, ‘미술관은 내친구’, ‘내마음대로 드로잉’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백영수 미술관이 개관 3년 만에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의정부시의 지원이 있었다. 경기도 북부에 자리한 인구 46만 명의 의정부시는 변변한 미술관이 없었던 문화불모지였다. 문화도시로 변신하고 싶었던 의정부시는 백영수 미술관이 문을 열자 도시의 랜드마크로 가꾸기 위해 2019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 조례’에 의거해 공공요금, 인건비 등을 지원해오고 있다. 

또한 2020년에는 미술관을 지역문화 활성화 기반을 구축하는 거점공간으로 키우기 위해 지역문화예술플랫폼 사업, 신진작가 발굴 및 상설전, 기획전 등 다양한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의정부에 터를 잡고 작품활동을 펼친 백 화백과의 인연을 매개로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시절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미술관의 아뜰리에.

실제로 백영수 미술관 개관은 의정부시의 문화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는 동력이 됐다. 미술관을 찾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지역민의 문화마인드를 넓히기 위해 전국 최초로 미술도서관을 개관한 데 이어 의정부예술의전당 리모델링 추진, 의정부상설야외무대 증축, 공공미술 프로젝트(문화뉴딜) 추진 등 경기북부지역의 대표적인 문화도시로 변신중이다. 특히 최근 의정부시는 문화예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건희 컬렉션’ 전용관을 반환미군기지인 캠프잭슨에 유치하기 위해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기관에 촉구하고 나섰다. 백영수 미술관이 시의 담대한 도전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의정부=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전남도립미술관’ 전통, 현대미술을 만나다

지금, 광양에 자리한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을 방문하면 즐거움이 두 배다. 독특한 건물 외관 등 새롭게 문을 연 미술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재미와 오랫동안 준비한 ‘개관 기념전’

kwangju.co.kr

 

최고의 브랜드 ‘예술인’ 도시 문화자산으로 키워야

4년 전,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수하물 창구로 가는 동안 모차르트의 초상화에서 부터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

kwangju.co.kr

 

민중미술의 대부 손장섭 화백 별세

민중미술의 대부 손장섭 화백이 지난 1일 별세했다. 향년 80세.1세대 민중미술 작가인 고인은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인 ‘현실과 발언’ 동인을 거쳐 민족미술인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

kwangju.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