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일 하러 서울서 온 故 신동남씨
광주역 인근서 총상…치료 중 사망
상무관 안치 과정에서 이름 바뀌어
2002년 검사에서 유가족 못 찾고
행불자 보상신청서 재확인 중 발견
이름 없이 묻혀있던 무명열사의 신원이 41년만에 밝혀졌다. 무명열사는 고(故) 신동남씨로 확인됐다.
15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국립5·18민주묘지 세미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무명열사(묘지번호 4-90번)에 안치된 사망자의 유전자와 신동남(1950년 6월 30일 생)씨 유족의 유전자 비교결과 동일인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옛 망월동 시립묘지(구묘역)에 ‘무명’으로 안장됐던 신동남씨 주검은 2002년 7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됐다. 이과정에서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일치하는 유가족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11월19일 조사위는 무명열사 묘 5기 중 3기에서 유전자 검사용 뼛조각을 다시 채취했다.
광주시가 보관한 행불자 가족 386명의 유전자와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지만 일치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조사위는 5·18 행불자 보상신청서와 5·18 당시 광주지역 병원 진료기록 등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신씨와 연관성을 찾았다.
이후 유전자 검사 기법인 SNP 기법으로 신씨 유전자와 비교검사를 진행해 형제일 확률이 99.99996%로 확인했다.
신씨은 1980년 미장일을 하기위해 서울에서 3개월 간 광주를 찾았다가 5·18민주화운동을 겪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5월 20일 밤에 기거하던 여인숙(이모씨, 김모 씨 등과 동거)에서 나갔다가 총에 맞아 적십자병원으로 후송됐다.
5월 20일은 광주역에서 제3공수여단이 첫 집단 발포를 한 시기이며, 신씨가 머물던 여인숙도 광주역 인근이었다는 점에서 광주역 첫 집단발포에서 신씨가 총상을 입은 것으로 조사위는 추정하고 있다.
신씨와 같이 지내던 이모씨는 5월 21일께 적십자병원의 간호사로부터 신씨가 수술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씨 등은 적십자병원으로 찾아가 수술 후 복부에 붕대가 감겨 있던 신씨를 확인했지만, 다음날 병원을 찾아가보니 신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후 5월 22일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시내 병원의 사망자들을 모두 상무관에 안치하는 과정에서 신씨의 시신도 함께 옮겨졌고, 이 과정에서 신씨 시신의 이름이 다른 이름인 이금영씨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금영씨가 생존해 있음이 확인돼 결국 신씨는 신원미상으로 처리돼 41년간 무명열사로 불리게 됐다.
신씨의 유족은 지난 1993년 7월과 1994년 2월 광주시에 행불자 신청을 했지만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 행불자로 인정받지 않았다.
신씨 동생은 이날 “행불자 보상신청에서 떨어진 후 사실상 형을 찾는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면서 “이번에 형을 찾아주어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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