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사를 가다<3>
선덕여왕 15년 ‘자장율사’ 창건
불·법·승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
신라 최초 ‘불교대학’ 역할 수행
3원 구성의 독특한 가람 배치
초여름 길목은 어수선하다. 봄꽃이 남긴 잔상 때문이려니 싶다. 절정을 향해 치닫던 봄꽃의 향연이 펼쳐진 지 불과 며칠 전이다. 다투듯 피어나 저마다 색을 발하더니 흔적마저 남아 있지 않다.
억겁의 시간에 비춰보면 그저 ‘찰나’일 뿐이다. 피었다 스러지는 것이 비단 꽃뿐이랴. 생명의 만물이 모두 그러하다. 화려하게 피었다고 우쭐댈 일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 슬퍼할 일도 아니다. 더욱이 열매가 보잘 것 없다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간의 무소불위는 모든 것을 무화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계절의 바뀜을 알리는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불볕이다. 계절은 떠나려는 봄을 그렇게 시샘했나 보다. 끝자락을 부여잡고 한동안 시기와 질시를 발하더니 상기도 져버린 꽃잎 뒤로, 그렇게 사뿐히 즈려밟고 와 있는 것이다. 미당 서정주의 시 구절처럼 마치 ‘눈물 아롱아롱 꽃비 내리던’ 길을 건너서 말이다.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간다. 그 말이 더없이 좋다. 통(通). 도(度). 사(寺). 이치를 통하였다, 라는 말이다. 범속한 세상에서 도를 안다는 것은 자못 뿌듯한 일이다. 법과 도는 크나큰 무엇이 아니다. 스스로 어떠한 정도나 한도를 안다는 것일 게다. 무람없이 행하지 않고 불의하지 않으며 순리를 득하여 그 이치에 맞게 행한다는 의미일 터.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엉긴 세상이다. 처음의 세상은 이러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싸움판으로 변모했다. 내편과 네 편으로 나눠 사생결단의 다툼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러는 사이 귀한 생명들은 스러져 가고, 약자들은 참혹하고 비루한 경지로 내몰린다. 슬픔과 고통은 끝이 없다. 한줌도 되지 않는 권세를 쥐고 만세가 지속될 것처럼 만용하는 무리들 탓이다.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는 경남 양산에 있다. 646년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 전해온다.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보사찰로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불(佛), 법(法), 승(僧)을 일컬어 삼보사찰이라 한다. 다시 말해 부처 사리를 봉안한 곳을 불보사찰(佛寶寺刹), 가르침인 법보를 소장한 곳을 법보사찰(法寶寺刹), 부처 제자인 고승을 배출한 가람을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 한다.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가 그 대표 사찰인데 대개 삼보사찰은 승려 교육과정인 선원·강원 그리고 율원의 세 기능이 결집돼 있다는 뜻에서 각각 총림이라 부른다.
양산시 하북면에 자리한 통도사는 영축산 자락을 거느리고 있다. 언급한 대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종갓집 위상을 지닌다. 통도사라는 이름의 내력은 이렇다.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의미에서 사찰의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고 내려온다.
통도사를 창건한 내력과 역사는 고대 문헌에 전해온다. ‘삼국유사’의 ‘탑상’(塔像) 편에 따르면 선덕왕 643 자장율사가 당에서 모시고 온 부처의 사리를 세 곳에 봉안한다. 황룡사탑(경주 황룡사), 태화사탑(울산 태화사) 그리고 통도사가 그것이다. 특히 통도사에는 진신사리 외에도 가사를 함께 계단에 두었다고 한다. 현재 통도사의 금강계단이 불보사찰을 상징하는 것은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통도사는 신라 최초 불교대학이라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아울러 오대산의 상원사, 설악산의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의 정암사는 부처의 사리와 정골을 나누어 봉안한 곳으로 통도사와 함께 5대 적멸보궁이라 부른다.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당시, 다시 말해 금강계단이 축조되기 이전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한다. 설화가 구전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해도, 이야기에는 일정한 개연성이 담보되기 마련이다. 연못에는 모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자장율사는 사찰을 짓기 위해 용들을 교화했는데 마지막 한 마리가 설득되지 않았다. 통도사에 남아 절을 지키겠노라는 거였다. 자장율사는 용의 간청을 이기지 못하고 연못 한쪽을 남겨두었다. 지금의 구룡지라는 연못이 있게 된 배경이다.
통도사 가람 배치는 여느 절과는 다르다.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의 3원이 그것인데 향로를 의미하는 로(爐)는 부처 공양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온다.
“천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하로전 영역으로 들어선다. 세 개의 원은 전체적으로 동서축선이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입하게 되지만 각 영역의 중심 축선은 남북축선이므로 결국 옆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하로전 중앙에 석탑을 두고 네 채의 전각이 둘러싼 형국인데, 북쪽에는 영산전(靈山殿), 동쪽에는 극락전(極樂殿), 서쪽에는 약사전(藥師殿), 남쪽에는 만세루(萬歲樓)가 자리 잡고 있다.”(주수완, ‘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 조계종출판사, 2020, 24쪽.)
특히 통도사 대웅전은 법당 사면에 편액이 비치돼 있어 이채롭다. 각기 대웅전, 대광명전, 금강계단,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이 그것이다. 여느 사찰과는 다른 가람배치와 대웅전의 다른 편액은 통도사만의 정신과 역사를 담보한다.
대웅전을 알현하고 대광명전 쪽으로 들어서자 설화 속 연못 구룡지가 펼쳐져 있다. 동그란 연잎들이 둥둥 떠 있는 수면으로 붉은 그림자가 설핏설핏 스친다. 알록달록한 금붕어의 유영이 한낮의 꿈처럼 아스라하다. 작은 못일지언정 도무지 불평 한마디 없는 모습에서 침잠과 적요의 그림자를 본다. 저 연못에서 오늘의 통도사가 연하였다는 사실이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에 올라 한동안 물끄러미 못 속을 응시한다. 우리 사는 세상 또한 그곳에 담겨 있는 듯하다. 다툼이 없는 세상은 물처럼 경계가 없다. 지위의 고하, 신분의 높음과 비천, 소유의 많음과 적음, 배움의 유무가 아니다. 청빈한 마음과 연민의 시선이면 되는 것을.
쨍하게 빛나는 햇살을 등에 지고 경내를 거닌다. 눈에 들어오는 글귀에 걸음을 잠시 멈춘다. 법화경에 나오는 구절을 보며 옮긴이의 속내를 가만히 가늠해본다. “지붕을 허술이 이어 놓으면 비가 올 때 빗물이 새는 것처럼 마음을 단단히 단속하지 않으면 탐욕이 틈을 타서 뚫고 들어온다” 무간의 세상에서 한번쯤 새겨들을 말이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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