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갈 곳 없는 노인들
경로당·복지관 등 한달째 휴관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집콕’
“감옥생활이 따로 없어. 이러다 우울증에 걸리겠어.”
윤모(77·광주시 북구 두암동) 할머니는 19일 오전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윤 할머니는 코로나19 사태로 급식소·경로당·문화센터 등이 문을 닫은 지난달 21일 이후, 매주 월·목요일이면 동네 종합사회복지관을 출근하듯 찾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매일 들락거리던 경로당·문화센터 대신 종합사회복지관을 자주 찾는 것은 일주일에 두 차례 나눠주는 간편식품을 받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일주일 동안 만나지 못한 또래 노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이다.
윤 할머니는 간편식품을 나눠주는 오전 11시보다 40분이나 먼저 도착해 복지관 입구에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코로나 확산에 맞서 광주·전남 자치단체들이 노인 일자리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노인복지관 (광주 9곳·전남 28곳),종합사회복지관이 문을 걸어 잠근데 이어 노인교실(44곳, 44곳), 노인들 대상 문화프로그램도 중단시킨 지 한 달이 됐다. 노인들이 틈만 나면 찾던 경로당(광주 1329곳, 전남 9121곳)도 폐쇄됐고, 무료급식소(광주 27곳, 전남 145곳)도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이들 시설은 코로나 확산세가 주춤한 지난달 18일 문을 열었다가 불과 나흘 만에 다시 휴관에 들어갔다.
졸지에 갈 곳을 잃어버린 노인들은 처음에는 집 안에 틀어박혔다. 윤 할머니도 그랬다. 하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TV는 코로나 얘기만 줄기차게 나와 지겨웠고, 홀로 있는 것은 더 참을 수 없었다.
질병보다 참을 수 없는 게 외로움이다. 노인들은 조심스럽게 또래 노인들을 찾아 나섰다. 경로당, 종합사회복지관 등이 휴관하면서 갈 곳 잃은 노인들이 야외로, 공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광주시 북구 우산동 근린공원은 이날도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선 노인들로 북적댔다. 이들은 삼삼오오 만나 장기와 바둑을 두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근 아파트단지 놀이터와 수퍼마켓 앞 의자에 앉아 햇살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아파트 놀이터 의자에 앉아있던 박모 할아버지는 “코로나19 때문에 경로당이 문을 닫아 종일 집에서만 지내다가 답답해 나왔다”고 했다. 광산구 우산동 빛여울채 아파트 슈퍼 앞에서 만난 임모 (67) 할아버지도 “갈 곳이 없으니 날 좋은 날에는 놀이터로 모여든다”면서 “평소 동네 경로당, 복지관을 찾는 노인들이 참 많았는데 문을 닫으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광주시 남구 빛고을 노인건강타운에도 산책을 나온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 평균 4000명이 넘는 노인들이 찾는 곳이지만 한 달 넘게 문이 닫힌 탓에 썰렁했다. 마스크를 낀 채 산책하던 노인들은 그래도 혹시나 평소 만나던 노인 친구들을 만날까 산책을 하면서도 두리번거렸다.
오모(77·광주시 남구 봉선동) 할아버지는 “복지관이 문을 닫아서 친구들 못 본지 한 참됐다. 안부 전화를 걸었는데, 집에만 있어서 인지 몸이 안 좋아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민수웅 문흥1동 경로당협회장은 “ 경로당이 문을 닫고 무기력증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노인 회원들이 많다”며 “경로당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상실감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정병호·김민석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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