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법 파산법정 가보니] 올들어 개인파산 신청 937건
대부분이 자영업자·실직자들···코로나 장기화에 벼랑 끝 몰려
2일 오전 광주지법 법정동 3층 303호 법정 앞. 재판이 시작되는 오전 10시를 앞두고 30분 전부터 파산 절차를 밟으려는 신청자들로 법정 앞은 북적였다. 재산보다 빚이 많고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법원의 심사를 거쳐 빚을 탕감해 주는 게 파산 제도다. 결국, 파산 법정을 찾는 이들은 벼랑 끝에서 버티고 버티다 두 손을 든 시민들이다.
이러다보니 얼굴엔 부끄러움, 미안함, 걱정이 가득하다. 고개를 숙인 채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 꺼리는 듯한 신청자들도 눈에 띄었다. 법정 앞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여기까지 오는 게 참 복잡했다”면서 말 끝을 흐렸다.
재판부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30분~1시간 간격으로 모두 137명에 대한 파산선고기일을 열고 파산선고 결정을 했다. 지난달에도 216건의 개인파산 신청이 이뤄졌다.
2일 광주지법과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들어 5월까지 광주지법에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937건. 전년도 같은 기간(805건)에 견줘 16.4%가 늘었다. 4월까지 757건이 접수돼 전년도 같은 기간(606건)보다 24.9%가 증가한 것에 비해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증가세다. 3년 간 빚의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 채무는 면제받는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1461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1561건)보다 줄어들었다. 일자리도 없어 소득나올 데가 없다보니 빚을 갚아나가는 회생 대신 단 한 번의 ‘빚잔치’로 끝내는 파산 신청이 많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광주지방법원 소속 한 파산 관재인은 “개인 파산 상담을 하는데, 대부분 자영업자·실직자들로 코로나 장기화로 빚을 못 갚고 버티다못해 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법정에 앉은 신청자들은 20대 젊은이부터 50~60대 아주머니, 70대 할아버지 등 다양했다.
전남도금융복지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말 개인파산을 신청했던 A씨 부부의 경우 2016년 대출을 받아 카페를 운영하다 인근에 생긴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리면서 매출이 줄었다.
이들은 부업으로 학원 차량까지 운행했지만 대출금, 카페 유지비, 카드 대금을 갚아 나가기 힘들어 개인회생을 신청, 매월 조금씩 갚아나가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까지 겹치면서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폐업했고 변제금도 갚지 못하면서 개인회생도 폐지되자 파산 신청을 했다.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다고 해서 빚 전체를 바로 탕감해주는 게 아니다.
면책을 받기 위해 신청자들이 제출할 서류도 30가지가 넘는다. 2개월 간 채권조사를 거쳐 면책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기한이 촉박하다는 말이 나올만하다. 과거 10년 간 소득증명,5년 간의 지방세 과세증명서를 비롯해 휴·폐업, 납세, 보험가입내역을 내야 하고 이혼한 가족들에 대한 서류까지 챙겨야한다.
몇 년 전 그만 둔 회사에 연락, 파산 신고를 위한 자료 제출을 요청한다거나, 이혼으로 연락이 소원했던 자녀들에게 자신의 경제 상황을 알리기 싫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법원 인근에서 만난 한 파산관재인들 귀띔이다. 파산관재인은 법원의 감독을 받으며 파산재단을 관리하고 처분할 권한을 가진다.
“파산 선고 뒤 재산 상태를 조사하게 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 때 제출하지 않거나 거짓말하는 경우, 허위 서류를 제공하는 경우 ‘면책 불허가’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걸 말해서 빚 탕감 못하면 어떻게할까’ 걱정하다 거짓말하시면 안됩니다. 재산 상태 조사하게되면 다 드러나니 사실대로 얘기하시고 같이 고민해서 해결하는 게 낫습니다.”
파산 선고 후 숨겨둔 재산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빚을 탕감(면책)받을 수 있는데, 기껏 파산 선고가 난 뒤 ‘면책’ 결정을 받아내지 못하면 빚은 고스란히 남고 온갖 서류를 제출하면서 시간만 쓰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파산 관재인인 변호사의 말을 듣고 있다 불안함을 느낀 참석자들의 어깨가 의자 등받이에서 떨어지며 앞으로 쏠렸다.
또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복권(면책 결정 확정 포함)을 받기 전에는 사법상 후견인, 유언집행자, 공무원 등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파산 선고를 받기 위해 법정에 온 대상자들은 재판장과 파산관재인의 한 마디에 집중했다.
파산선고를 받은 남성은 “면책 결정을 받기까지 준비할 서류도 많지만 불안정한 일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다시 일어서지 않겠냐”며 법정을 나섰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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