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전일방송 이용호 부장 삭제된 생방송 원고 5·18기록관에 기증
1980년 계엄군의 엄혹한 언론 통제 실상을 알 수 있는 방송원고가 41년 만에 공개됐다.
17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전일방송(VOC) 이용호 뉴스부장은 1980년 6월 4·5일자 전일방송 ‘뉴스의 현장’ 방송원고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했다.
전일방송은 ‘광주일보’의 전신인 ‘옛 전남일보’의 계열사로, 전남 뿐 아니라 전북에서도 청취가 가능했다.
이 부장의 방송원고는 당시 전일방송 오후 6시 프로그램이던 ‘뉴스의 현장’에 사용할 내용으로, 계엄군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당시만해도 생방송의 경우 원고 없이 방송이 이뤄졌다는 게 이 부장 설명이다.
이번에 공개된 원고는 총 13장으로, 전일방송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원고지에 1~6으로 페이지 번호가 매겨진 원고 한 부와 7페이지까지 매겨진 원고 한 부 등 2부다.
방송원고는 계엄군의 검열로 원고 곳곳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있다. 잘려나간 내용도 5·18의 상황을 기재한 웬만한 내용은 모두 들어내 5·18의 실상을 축소하고 삭제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보인다는게 5·18기록관 학예연구사 설명이다.
원고 중 ‘그 때 그 현장의 줄지어 선 헌혈의 대열을 뇌리에 새기며 병상의 일시를 적어가고 있습니다. 광주사태가 계속된 며칠동안 젊은이들의 선혈이 하얀시트를 적시던 그날, 그날이 바로 21일 이었습니다’, ‘엠브런스가 아니라 손수레에 응급환자가 실려왔고 의사와 간호원들은 그 엄청난 사태의 흥분이 지금껏 가시지 않은 듯 꿈만 같았다며 침통한 모습이었습니다’ 등의 내용은 통채로 들어내라고 빨간 줄이 그어졌다.
또 원고 중 ‘절규의 5월’이라는 단어가 빠지는가 하면, ‘5월의 신록속에 묻힌 수많은 영령들에게’ 라는 문장에서는 ‘수많은’이라는 단어를 빼도록 표시됐다.
방송원고를 기증한 이용호 씨는 “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던 처참한 현장을 높은 건물에서 목도하고도 방송 한마디 할 수 없었던 것을, 총칼 앞에 언론도 언론이지 못한 세상을 한탄하며 지냈다”면서 “당시 원고의 절반 이상이 잘려나가면서 할 멘트가 없다보니 ‘여러분 말 조심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멘트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정용화 5·18기록관 관장은 “5·18 당시 신문 뿐만 아니라 방송 등 모든 언론에서 검열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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