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조사위에 낸 진정서 보니
“허화평 등 ‘쓰리 허’와 불화로 광주 진압작전 배제” 강변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인정 내용도 포함
신군부 행적 등 5·18 진상 규명 도움 될지 초미의 관심
“5차례 광주 방문 작전지휘 아닌 인사·군수 지원 업무” 주장
도청 진압작전 후 장형태 지사와 인사…증언 신빙성 의심도
5·18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소장)이던 정호용(89)씨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5·18 가해 책임자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에는 특전사 작전 참모로 있던 장세동씨의 광주 출동, 5·18과 전두환 집권 시나리오와의 관련성 등이 언급되면서 향후 미완의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광주일보가 확인한 정씨의 진정서는 모두 2번에 걸쳐(2월·3월) 총 24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정씨는 특전사령관을 맡았어도 실질적 작전 지휘권이 없었는데, ‘5·18 가해책임자’로 지목됐다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전두환를 비롯한 5공 실세인 허화평·허삼수·허문도·장세동과 불화·갈등 관계로 광주 진압 작전에 배제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는 ▲5차례의 헬기 출동은 진압 작전과 무관한 인사·군수 지원 업무 수행 ▲ 장세동 등 5공 실세와의 갈등 관계로 광주 진압 작전의 주동자가 될 수 없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진정서에 담았다.
특히 ‘5월 10일께 당시 특전사 작전 참모직을 맡고 있는 장세동 외 5인(박중환 특전사 작전과장을 포함해 하사관 등 5명)이 광주에 출동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진정서에 적시돼 ‘전두환의 분신’으로 알려진 장세동씨의 광주 행적 파악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진정서에는 ‘전두환의 집권시나리오’와 5·18 도청 진압 작전과의 관계도 언급됐다. 그는 진정서에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1980년 2월 정당창당, 4월 언론통폐합 관련 브리핑, 5월17일 계엄확대,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립이 진행됐다’고 언급했다.
1980년 2월 전두환이 ‘우리 참모들이 정당 창당을 하려는 듯한데 어디서 자금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해, 180억원 모금이 가능해졌다고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인 허화평 대령에게 알려줬다는 내용, 같은 해 4월 당시 중앙정보부 비서실장인 허문도가 ‘언론통폐합법’을 브리핑한 데 따라 자신이 보완 지시한 주장 등도 진정서에 담겼다.
허삼수가 지난 1980년 4월 23일 도청 탈환 작전을 27일에서 3~4일 앞당기는 것이 어떤지 물어왔다는 내용도 진정서에 들어있다. 이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1980년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립이 결정돼 있는 만큼 그 전에 광주 상황을 빨리 마무리짓기 위한 것 아니겠냐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정씨가 진정서에 5번의 광주방문상황 중 마지막인 26일 밤 9시께 광주에 도착해 작전개시(27일 새벽 4시께) 전인 5시간만 광주에 머물렀다고 진술한 점을 들어 정씨가 1980년 5월 27일 장형태 전남지사와 인사하는 영상과 비교해 신뢰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선태 5·18진상조사위원장은 “정호용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진상 규명에 중요한 사항이라 조심히 다가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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