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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이상호 비엔날레 참여작가 “시대 담은 민중미술 계속 이어가야죠”

by 광주일보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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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삶 지켜준 사람들에 좋은 그림으로 보답”
‘걸개그림’ 국보법 위반 구속…30년 아픔 트라우마센터 통해 안정 찾아
불교미술 접목 작품 확장…5월 유족과 인연, 삶·예술 연극으로 만들어져

비엔날레출품작 ‘일제를 빛낸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상호 작가. 그의 삶은 연극 ‘어머니와 그’로도 만들어졌다.<김영태 작가 제공>

 

올해 예순 둘이 된 민중미술 작가 이상호는 최근 3년 동안의 삶이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힘든 삶이었지만 자신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며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호 작가는 오랜 시간 정신질환과 싸워왔다. 조선대 미술학과 3학년 때 화염병을 던지다 경찰에 끌려가 수없이 구타당한 후 닥친 불행이었다. 6월 항쟁 때는 걸개그림이 발단이 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됐다. 30여년간 나주정신병원을 수차례 오고 가는 삶이 계속됐다. 모두 합치면 6년여, 2000여일의 시간이다. 어둠의 시간을 지나, 그는 3년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에 다니며 상담을 통해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한 동안 놓았던 그림 작업에도 매진했다.

이 작가는 최근 막을 내린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선보였고 뉴욕타임즈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또 그의 삶과 예술이 모티브가 된 오월 연극 ‘어머니와 그’도 공연된다.

5·18이 발생하고 아직은 엄혹한 세월이었던 1980년 초반, 오월어머니회 유가족들은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를 하곤 했다. 1984년, 이 작가는 우연히 시위에 합류했다 어머니들과 나주 경찰서로 끌려갔다.

“당시 경찰서에서도 내 아들 살려 내라며 외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한과 슬픔을 알 수 있었죠. 유가족 사이에 혼자 있는 저를 경찰들이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니, 어머니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셨어요. 아마도 제가 따로 끌려가 봉변을 당할까 걱정이 되셨나 봐요. 그 때 한 분이 나서서 ‘내 둘째 아들인데 왜 데려가려고 하느냐. 절대 못 데려간다’며 적극적으로 막아주셔서 위기를 모면했죠.”

그 때의 기억은 늘 마음 속에 있었지만, 힘든 생활이 이어지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유가족들을 인터뷰한 책에 한 어머니의 회고가 실렸다. “조선대 다니던 그림 그리는 학생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이 작가는 광주트라우마센터 명지원 센터장과 상담을 하며 큰 위로를 받던 참이었고, 명 센터장의 소개로 36년만에 ‘그 어머니’가 고(故) 김경철 열사의 모친 임근단 여사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상호 작가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극단 깍지의 ‘어머니와 그’

 

두 사람의 사연과 이후의 이야기들은 극단 ‘깍지’가 지난해 연극으로 만들어 초연했다. 양태훈 극단 얼·아리 대표가 희곡을 쓰고, 김준호·김은숙·김정훈 배우가 출연한 작품은 오는 17일 민들레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상호 작가의 작품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올해 열린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92명의 친일인사를 단죄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은 박정희 대통령기념재단이 작품 철거를 요구하면서 오히려 화제가 됐다.

“비엔날레 외국인 감독들이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40여년간 민중미술을 꾸준히 해온 제 작업이 인상적이었던듯해요.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전시작을 고른 후 신작을 요청하더군요. 여러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고, 시각적 효과가 큰 그림을 통해 친일 청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민족문제연구소광주지부와 협업을 통해 1년 동안 진행한 작품입니다. 인물 선정 등 모두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갔죠. 음식을 가져다 주고, 작업실 냉난방기를 사주신 분도 계셨어요. 붓을 제가 들었을 뿐이지, 광주 시민이 함께 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간 힘들기도 했지만 참 행복했어요.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제 그림 앞에 오래 머물다가는 관람객들을 보며 기분도 좋았구요.”

이 작품은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시민역사박물관에 기증된다.

이 작가의 삶은 수 십년간 어둠 속이었다. 병은 좀처럼 낫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외면하고, 좋아하는 그림도 많이 그리지 못하는 외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끈끈한 사랑으로 그를 잡아둔 소중한 이들도 있었다. 한달에 한번 작업실을 방문, 대화를 이어가는 명지원 씨, 우연히 만날 때면 술한 잔을 권하며 개인전을 독려하고, 전시회 때 큰 돈을 선뜻 내어준 강연균 화백, 민족문제연구소 김순흥 광주지부장, 이지훈 사무국장, 전시를 독려해준 노주일 작가 등 선후배들 모두 귀한 인연이다.

“사실, 아직도 이런 그림을 그리느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죠. 제가 민중미술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해요. 이 시대가 현상이 변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통일문제나 반외세 문제에 대해서는 말이죠. 요즘에는 일관성 있는 꾸준한 작업이라며 응원하고 좋아보인다고 하는 사람도 생기네요.(웃음).”

독실한 불자인 그는 2000년부터 독학으로 탱화를 공부했다. 3년 전에는 무각사에서 ‘연필로 그린 부처님전’을 열기도 했다. 앞으로 민중미술과 불교미술을 결합한 작품을 진행할 예정이다.

“은혜를 갚아야 할텐데 하고 말하면 ‘끊임없이 좋은 그림을 그리면 그게 보답하는 것’이라는 말들을 해주십니다. 숱한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저처럼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은 이도 드물듯 합니다. 비워내고 욕심을 갖지 않는 것, 제 자신에게 늘 하는 말입니다.”

인터뷰 중 그가 자주 한 말은 이것이었다. “고마운 분을 한 분 더 이야기해도 될까요?”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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