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내가 사랑한 티셔츠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채소의 기분, 바다 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등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나 ‘잡문집’ 등을 읽은 이라면 그의 에세이를 즐겨 찾게 된다. 정말 다채로운 주제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은, 그 가벼움 속에 나의 모습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그의 신간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더 관심이 간다.
신작 ‘무라카미 T-내가 사랑한 티셔츠’는 그가 소장하고 있는 티셔츠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를 함께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니까 쓸 수 있는 책이겠다” 싶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름이면 반바지에 티셔츠, 맨발에 스케처스 스니커즈를 신는 그라면 말이다.
책은 그가 일본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으로 소장품 중 마음에 드는 낡은 티셔츠를 펼쳐 놓은 뒤 사진을 찍고 거기에 대한 짧은 글을 덧붙였다. 책에는 100여종의 티셔츠와 열여덟편의 에세이가 실렸고, 말미에는 연재를 했던 잡지사 관계자와 티셔츠를 비롯해 여러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가 함께 담겼다.
그는 “다 듣지 못할 양의 LP, 다시 읽을 일 없을 책과 잡지 스크랩, 연필깎이에 끼우지도 못할 만큼 짧아진 연필” 등과 마찬가지로, 수백장의 티셔츠 역시 ‘모으려고’ 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레 ‘모이게’ 된 것들이라고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티셔츠는 대부분 값비싼 유명 브랜드가 아닌, 중고매장 등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여행지에서 갈아입을 목적으로 구입한 것들도 있다. 1달러나, 1달러 99센트를 주고 구입한 값싸고 재미있는 티셔츠들에는 각각의 사연이 담겼다. 또 기업이 홍보용으로 제작한 티셔츠나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공연장에서 구입한 셔츠등 책에 등장하는 티셔츠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블루스를 라이브로 들으며 초밥을 먹을 수 있는 집 ‘스시 블루스’의 푸른색 티셔츠, 브루스 스프링스턴이나 비치 보이스 콘서트의 여운을 즐기게 해주는 티셔츠, 보스턴 마라톤의 추억이 담긴 티셔츠는 흥미롭다. 특히 스페인,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노르웨이의 숲’ 등 그의 작품 발매와 북토크 등을 기념해 제작한 티셔츠도 인상적이다.
그가 티셔츠를 고르는 기준은 디자인과 장르. 레코드 플레이어나 레코드가 들어간 것이나 맥주, 자동차 광고 티셔츠는 자주 구입하는 편이라고 한다. 목 부분이 적당히 늘어난 티셔츠를 좋아하는 그는 일 때문에 사진 촬영을 할 때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무지 티셔츠를 입는다.
좋아하는 레코드도 50달러 이상이면 수집하지 않는다는 그는 “뭐든 돈만 내면 그만이라는 식은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수집하는 이라면 새겨들을 말이다.<비채·1만48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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