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폐목재 공장 노동자 사망 이후 광주지법 산재 판결 23건 분석 해보니
대부분 수백만원 벌금형·집행유예 그쳐…28명 중 실형은 2명 불과
광주·전남 지난해 산재 사망 68명…‘안전 투자보다 벌금’ 인식 우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계기 수사·사법기관 인식 변화 필요 지적
625만원. 광주지방법원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사고와 관련, 사업주나 고용주, 법인에 부과한 벌금을 사망자(12명) 숫자로 나눈 평균 금액이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숨지게 한 죄에 대한 처벌 수위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말이 나올만하다.
법원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죽음을 어떻게 다룰까. 광주·전남 산업현장에서는 지난해 5월 폐목재 가공업체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를 계기로 재해 예방을 위해서라도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광주지방법원 판결문에서는 이같은 인식 변화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특히 판결문 속 산재 사망 사고를 낸 사업주·법인의 경우 소규모 영세사업장이 적지 않은데, 3년 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을 유예받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산업현장에서 실제 사고를 줄이기 위한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명이 숨진 18개 사건, 실형은 단 2명=광주지법이 지난해 다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은 모두 23건. 1심 18건, 항소심에서는 5건의 산안법 위반 사건 판결이 났다.
이들 판결문을 모두 분석한 결과, 12명의 노동자 사망으로 인해 28명이 기소됐지만 이들 중 실형을 선고받고 실제 수감된 경우는 2명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형 집행이 미뤄진 케이스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들도 항소심에서는 모두 감형을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광주지법이 이들에게 선고한 평균 형량은 징역 6.63개월이었다. 28명 중 12명이 ‘징역이나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1년 이상 형을 선고한 경우는 전무했다.
◇안전조치 소홀해 노동자 사망했는데 벌금도 고작 400만원=벌금 액수도 턱없이 낮았다. 광주지법이 1심과 항소심에서 12명의 노동자를 숨지게 한 죄로 재판에 넘겨진 고용주나 사업주, 법인에게 부과한 벌금 총액은 9500만원. 노동자 한 명당 고작 527만원의 벌금을 낸 것이다. 개인으로는 평균 400만원, 법인은 478.5만원이었다. 수천만~수억원, 수십억원짜리 사업을 추진하다 안전 사고를 낸 기업에게 책임 비용으로 470만원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는 게 과연 현장에서 안전사고를 줄이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안전시스템을 갖추고 안전 관리자를 고용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사고 뒤 합의·처벌 비용이 적은 경우 안전조치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지난 15일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업주 A(54)씨에 대한 검찰의 구형량은 징역 6개월, 벌금 500만원이 전부였다. 오죽했으면 피해자 가족들도 법정에서 “한개의 안전 장비도 없이 7m 높이에서 작업하다 숨진 목숨값으로 징역 6개월, 벌금 500만원이라는 것을 납득하겠냐”고 하소연했다. 광주지법 형사 9단독 김두희 판사는 A씨에 대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한편, 법인에게는 벌금 1000만원을 법인에 부과했다.
문재인 정부가 오는 2022년까지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에 도달하기에는 요원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자도 잘못 있다”, “보험금 받아서” 감형 =광주지법의 판결문에는 법원의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문구가 적지 않다.
7m 높이의 지붕 위에서 철거 작업을 하다 떨어져 숨진 사고의 경우 사업주는 피해자 유족들에게 용서받지 못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사망 노동자도 안전고리를 고정시키지 않고 작업한 게 사고 발생의 원인이 된 만큼 피해자 과실도 있다는 점이 유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됐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금을 지급받은 점도 참작됐다. 산재보험은 의무 가입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하는 산재보험금으로 일부 피해 회복이 이뤄졌다고 판단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또 상당수 판결문에서는 노동자의 과실 탓도 지적됐고 “유가족과 합의한 점”을 반영했다는 문구는 관행구처럼 자주 반복됐다.
광주지법 항소심 판결문 5건 중 1심에서 실형을 받은 2건의 경우 모두 집행유예로 형량이 줄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해당 사업장 관리담당자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받은 전력에도,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을 받았다. 나머지 3건 중 형이 늘어난 것은 벌금이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많아진 게 고작이다.
◇산업재해, 이정도 처벌 수위로 억제될까=노동계를 중심을 이 정도 처벌로 산업현장에서의 사고를 막기에는 미흡하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전남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68명(광주18명·전남50명)에 달한다.
올해 3월까지 광주에서만 5명, 전남에서 5명이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숨을 거뒀다.
노동계는 폐목재 가공업체 20대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산업재해 처벌 목소리 높아졌지만 법원 분위기는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법원도 최근 들어서야 이를 인식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재 형량을 강화하는 기준안을 마련 올해 7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존 법의 양형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법원·수사기관의 인식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터에서의 노동자의 사망을 ‘기업범죄’로 인식시키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보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권오산 광주·전남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산안법상 처벌이 너무 경미해 사업주들 사이에서는 사고를 막기위해 드는 비용보다 벌금이 적게나온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면서 “사회적으로 이러한 인식이 바뀌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법원 등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은 여전히 과거의 인식과 반복되는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산업현장의 안전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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