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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북스

‘인성풍수’ - 땅의 길흉은 사람의 덕을 따른다

by 광주일보 2021.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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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태봉도. 법주사 뒤쪽으로 봉긋한 범종 모양의 태봉과 주위 속리산의 산세를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지오북 제공>

“길흉의 조건은 땅에서만 구할 수 없으며 사람의 덕(德)을 본받아 따른다.”

조선왕조 풍수 교과서 ‘지리신법호순신’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의 저자는 길흉이 작동하는 조건에서 덕이 주고, 풍수는 종이라고 보았다. 이른바 “스스로 수양하여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인성풍수의 개념이다.

인성의 함양, 윤리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땅의 길흉은 사람의 덕을 따른다’는 것이다. 세종을 비롯한 왕들이 민생을 먼저 고려해 산릉 조성을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땅은 자연지형이지만 명당은 풍수경관으로 관계를 맺는 주체들에 의해 완성된다. 조선왕실의 풍수가 비보에서 벗어나 길흉을 ‘덕’과 ‘인성’이라는 내적인 장치에서 바라본 이유다.

태조는 한양천도부터 풍수사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왕들 또한 풍수 조예가 깊었으며 이를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문제는 후기로 갈수록 지나친 맹신과 길지에 대한 집착이 재정 파탄으로 이어졌으며, 더러는 풍수 악용으로 국력이 소모되기도 했다.

조선의 풍수문화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조선왕실의 풍수문화’는 풍수경관의 미학 등을 아우른다. 저자인 경상국립대학교 최원석 교수는 한국풍수를 지리학, 문화사, 인문학 영역으로 탐구해왔다. 이번 책은 그 연장선의 결과물로, 조선 왕실의 풍수경관을 문헌과 현장에서 통시적으로 들여다본다.

고려왕조는 선불교에 기반한 비보풍수를 중시했다면 조선은 성리학 영향을 받은 인성풍수를 강조했다. 지리적 조건에 사람과 문화 역할을 상보적으로 강조했다.

“비보풍수는 불가(승려), 인성풍수는 유가(유학자)에 의해 지식체계가 창도되었다. 고려왕조의 불교적 기조에서 실천된 비보풍수를 조선왕조의 유교적 기조에서 실천된 인성풍수가 대체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풍수 두 기둥은 명당풍수와 비보풍수다. 전자는 이상적인 땅을 찾아서 자리 잡는 풍수인 반면, 후자는 부족한 땅을 보완해 명당으로 가꾸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명당도 실제로는 비보하게 마련이고 세상의 어느 비보도 명당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명당은 이상, 비보는 현실인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선왕실에서 풍수는 왕권을 강화하거나 정치권력간의 세력 다툼에 활용됐다. 궁성, 태실, 산릉의 풍수는 대규모 공사, 인력이 소요되는 대사였다. 왕은 궁성, 태실, 산릉 풍수 입지와 경관 조성을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썼다.

선조 당시에 “모두들 선왕조 때 간신들이 산릉의 일을 가지고 죄를 얽어 살육한 것만을 생각했다”(‘선조실록’, 33년 9월 2일)라고 통탄한 표현이 있다. 산릉의 일이 왕실에서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됐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는 풍수담론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논쟁을 유발했다. 입지를 비롯해 경복궁의 주산, 명당 논쟁이 그러한 예다.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이후 도성공간은 성종 때까지 궁궐 주변의 산줄기 비보, 물줄기 비보 등에 집중됐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궁성 주위에 못을 파거나, 청계천 명당수 부분도 한양의 물길비보 측면에서 접근했다.

조선왕실 풍수에는 사회문화적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담겨 있다. 도성과 궁궐의 환경계획 외에도 경관관리를 위한 지침으로 활용했다. 죽음의 존엄, 영속의 바람은 단순한 산릉 조성이라는 의례를 넘어 장소미학으로 구현됐다. 반면 풍수에 대한 맹신은 백성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시켰고 지나친 산릉 조성은 왕실 재정 파탄의 원인이 됐다.

저자는 우리민족의 풍수인식이 자연경관의 이해와 공간미학에 대한 동아시아적 가치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지오북·3만3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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