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영국 총선에서 화제가 된 가전제품이 있었다. 바로 냉장고다. 당시 시사평론가들과 대중은 방송에 공개된 데이비드 캐머럿 총리 가족의 냉장고와 안의 내용물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로 냉장고는 “사회적 지위와 생활 수준은 물론 감각이나 브랜드 취향, 쇼핑습관” 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냉장고는 가전제품 가운데서도 중요한 필수품이다. 전체 가구 40%를 차지하는 1인가구에서 가정용 전화기는 거의 사라졌고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텔레비전을 없애는 가정도 늘고 있다. 코인세탁방이 등장하면서 세탁기가 없는 가구도 적지 않다.
그러나 냉장고가 없는 집은 거의 없다. 냉장고의 역사를 통해 ‘필요’를 조명하는 이색적인 책이 출간됐다. 런던과학박물관 최고 인기 도서인 ‘필요의 탄생’이 그것. 저자인 런던과학박물관 큐레이터 헬렌 피빗은 인류의 일상을 바꾼 ‘냉장고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됐는지 탐구한다.
최근에 이슈로 부각된 용어 가운데 ‘콜드체인’이 있다. 이전에는 잘 쓰이지 않았지만 코로나19 백신 확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저온 유통 체계’를 뜻하는 콜드체인이 익숙해졌다.
10여 년 전에도 마케팅 영역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크래프트 맥주(수제맥주) 열풍이 콜드체인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빛과 열에 약한 맥주는 온도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의 소규모 수제맥주회사들이 콜드체인 유통을 도입하면서 ‘변형되지 않는 진정한 맛을 보장한다’고 홍보했다. 국내 수제맥주회사들도 콜드체인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수제맥주시장이 2013년 93억 원에서 2019년 88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사실 식품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은 냉장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장고에는 시대의 소망과 욕망, 사회문화적 맥락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183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 냉각기술 특허신청이 넘쳐났다. 기계식 냉장기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근대 냉장 기술이 시작된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을 다룬다. 2장에서는 얼음의 수요가 늘면서 얼음 만드는 기술도 발달하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차가운 얼음을 만들기 위한 뜨거운 경쟁이 콜드체인의 역사를 만들었다.
3장은 가정용 냉장고의 개발사가 주 내용이다. 1960년대 미국을 위시한 각국에서 냉장고는 필수품이 됐다.
냉장고에 얽힌 사회적 변화와 욕구를 조명하는 내용도 있다. 4장에서는 냉장고가 주방에 들어오면서 건축은 물론 주부의 가사 노동이 어떻게 감소했는지 분석했다.
5장은 냉장고가 지금과 같은 형태와 구조를 갖게 된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100년의 냉장고 역사는 내외부 소재를 고르고 소비자 필요에 맞는 외관, 취향, 냄새, 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 6장은 냉장고 발달과 요리 변화를 다룬다. 제조사들이 판매 촉진을 위해 음식 제조법을 다룬 요리책을 배포한 사례 등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7장과 8장은 각각 냉장고와 인류의 상관관계, 냉장기술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과연 앞으로 냉장고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까.
<푸른숲·1만9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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